트럼프가 말한 "전리품", 다시 그리는 패권지도[특파원칼럼]

트럼프가 말한 "전리품", 다시 그리는 패권지도[특파원칼럼]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4.08 04:14

[특파원칼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 중 저격용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고 있다. /워싱턴DC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 중 저격용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고 있다. /워싱턴DC AP=뉴시스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생중계된 발언 가운데 그가 "승자의 전리품"을 언급한 게 눈에 띈다. 전쟁이 민주주의나 정의 실현 같은 이상적 목적으로만 시작되진 않는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전리품으로 석유를 언급했지만 외교가에선 그 너머에 주목한다. 거칠 것 없는 트럼프 대통령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이란전쟁의 '숨은 전리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글로벌 권력 재편이다. 미국의 잠재적 경쟁국인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글로벌 패권 경쟁 시나리오가 중동전쟁의 한축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중동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서구권으로 뻗어 나가는 핵심 길목이다. 미국의 전략은 그런 중동에서도 고질적인 골칫덩이이자 중국의 밀착 파트너인 이란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인도에서 시작해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교역로다. 껄끄러운 중국 대신 인도를 파트너로 글로벌 패권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교역로가 뚫리면 중동도 그동안의 지정학적 불안을 떨쳐내고 '포스트 석유' 시대의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게 된다.

이런 거대한 설계에 오랜 앙숙이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대변되는 이 생경한 연대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글로벌 질서에서 이란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 축을 건설하려는 치밀한 포석이 이란전쟁에 숨은 그림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오히려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다시 중동이라는 수렁에 빠져들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대한 집중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미국을 수십 년간 발목 잡았던 중동 문제가 미국의 의도대로 타결된다면 미국의 다음 화살촉은 어디를 향할지를 봐야 한다.

종착지는 아시아, 즉 중국이다. 중동 전선 정리는 곧 아시아 전선으로의 전력 이동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전쟁은 중동이라는 구질서 무대의 폐막식이자 중국을 겨냥한 신질서 구축의 개막식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들도 약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며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완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고 들어간 건 분명하다. 이란전쟁의 결말이 미국의 구상대로 흘러갈지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상황을 그저 '트럼프의 돌발 행동'이나 '미국의 실책'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치솟는 유가와 물가에만 발을 구를 때가 아니다. 본질적인 위기는 우리가 거대한 판의 흐름을 놓치는 데서 온다. 중동의 지형 변화는 곧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다음 그림은 인도-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과 외교안보 질서의 재구축이 될 것이다. 한국은 그 과정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트럼프는 틀렸다'는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트럼프가 무엇을 노리는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국제 정치의 냉혹한 세계에서 판을 잘못 읽은 외교에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난전을 자책골로 비웃을 때가 아니다. 골대 뒤에서 그들이 새로 그리는 경기 규칙이 우리에게 어떤 청구서로 돌아올지 면밀히 따져 주사위를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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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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