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파도치듯 물이 막 들어오는데 문도 안 열리고 창문 통해 겨우 빠져나왔어요. 누전차단기가 내려갔으니 망정이지 안 내려갔으면 나는 여기에 없었죠."
서울 동작구 사당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는 한모씨(72)가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씨는 당시 저녁 8시 40분쯤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굉음이 발생한 후 물이 한씨 목 끝까지 차오르는 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한씨는 문을 열고 밖으로 대피하려고 시도했지만, 수압으로 인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씨가 있는 힘껏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문에 포기하고 이내 바깥으로 연결된 창문 쪽으로 향했다.
한씨는 "다급히 창문을 찾아 열려고 시도했는데 쉽게 열리지 않아 죽기 살기로 창문을 두드렸다"며 "다행히 밖에 와있던 구조대의 도움으로 창문을 통해 집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탈출할 때 챙긴 거라곤 입고 있던 옷과 휴대폰 하나가 전부였다. 한씨는 밤 9시쯤 집에서 나와 밤 11시쯤에야 사당동 종합체육센터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뉠 수 있었다.
이틀간 서울과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로 주택 침수 등 피해가 속출했다.
10일 동작구청 등에 따르면 8일 오후부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사당동 주민 110여명(누적)이 서울 동작구 사당 종합체육센터로 대피했다.
이재민들은 지난 8일부터 사당동 종합체육관과 주민센터의 임시대피소에서 잠을 청했다. 취재진이 찾은 이날 오후까지도 대피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임시대피소가 된 체육관 입구에는 담요와 화장지, 베개, 칫솔, 비누 등이 들어있는 응급구호품 상자와 생수통이 놓여있었다. 대피한 주민들은 체육관 안 차가운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앉거나 누워있었다.
오후 1시 30분쯤이 지나자 구청 직원들은 이재민들에게 배달온 도시락과 물을 제공했다. 이재민들은 구호 물품 상자를 식탁 삼아 그 위에서 식사했다.
임시대피소에서 머니투데이 취재진과 만난 이재민들은 저지대 혹은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과 옹벽이 붕괴해 정전 피해를 본 동작구 사당동 극동아파트 주민이 대다수였다.
사당동 연립주택 지하에 거주하는 이모씨(89)는 집 안에 다리 높이까지 물이 가득 차는 피해를 보았다. 20년간 이 연립주택에 거주했지만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씨는 "바닥에 놓여있던 물건이 둥둥 떠 있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며 "집에는 도대체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언제 집을 다 정리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사당동 극동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상희씨(84)는 지난 8일 저녁 9시쯤 고령의 몸을 이끌고 저층의 집에서 20층 높이의 옥상까지 걸어 올라간 뒤 옆 동으로 이동해 정전된 아파트를 탈출했다. 쏟아진 폭우에 아파트 인근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옹벽이 무너졌다. 이내 아파트 전체가 정전됐다.
이씨는 "녹내장을 오래 앓고 있는데 정신이 없어 약을 챙겨 나오지 못했다"며 "딸이 대신 20층을 다시 올라가서 옥상을 넘어 집으로 내려가 약을 가지고 오는 수고로움을 반복해 지금 겨우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거주지가 파손되거나 침수된 이재민은 주로 서울과 경기에 집중돼 411세대 600명에 달한다. 거주지가 파손되지는 않았지만 극동아파트와 같이 정전피해 등을 입은 곳까지 합하면 이재민 수는 871세대 1471명으로 파악된다. 이재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마련한 주민센터와 학교 체육관 등 임시주거시설 103개소에 머물고 있다.
한편, 중대본은 지난 8일부터 중부지방에 400㎜ 이상의 강우가 내렸고 앞으로도 정체전선이 이동하면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최대 300㎜의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고 시민들이 안전사고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