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안 써도 될 수술에 펑펑, 혈액낭비 '피눈물'

이창섭 기자
2023.02.24 05:10

지난해 혈액 사용량, 전국 500여개 병원서 140만L
국내 슬관절치환술 수혈률 78%…美·中 8%대 그쳐
정부 폐기율관리만 치중, 적정사용 가이드라인 필요

올해 혈액 수급 위기가 가장 긴급한 단계인 '심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속적인 헌혈 인구 감소로 일평균 혈액 공급량(5407단위)보다 소요량(5482단위)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캠페인 등 매해 헌혈률 제고(提高)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지만, 무릎 수술의 수혈 등 의료기관에서의 불필요한 혈액 낭비부터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의료기관에서 하루 평균 3900리터(ℓ)의 막대한 혈액이 사용됐지만 현장에서는 사용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국민의힘) 의원실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받은 헌혈 인구 추계에 따르면, 올해 헌혈 인구는 197만3650명으로 추산된다. 일평균 5407단위(유닛)의 혈액이 헌혈로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올해 기준 일평균 혈액 소요량인 5482단위보다 적어 혈액 수급 위기 단계 중 '심각'(1일분 미만)에 해당하는 수치다.

혈액 수급 위기 단계는 혈액 보유량에 따라 5일분 미만 '관심', 3일분 미만 '주의', 2일분 미만 '경계', 1일분 미만일 때는 즉각적인 대응 태세에 돌입하는 '심각' 단계로 구분된다.

혈액 공급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저출생·고령화로 우리나라의 헌혈 가능 인구(16~69세)가 올해 3917만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50년에는 2758만명(약 30% 감소)에 이를 전망이다. 헌혈률도 2018년 7.3%에서 지난해 6.8%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철에는 헌혈률이 줄어 매해 혈액 부족 현상이 반복됐다.

이 의원은 "헌혈 캠페인을 통한 헌혈률 제고가 겨울철마다 반복되는 혈액 부족 사태 해법으로 제시된다"면서도 "수술 중 무분별한 수혈로 인한 혈액 낭비부터 막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공개된 '2020년(1차) 수혈 적정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슬관절(무릎) 수술 중 혈액 사용량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의 슬관절치환술 수혈률이 78%에 달하는 반면 동일한 수술 시 미국은 8%, 영국은 7.5%, 호주는 14% 수혈률을 보였다.

김태엽 건국대병원 교수(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회장)는 "슬관절치환술은 대체로 수혈이 필요 없는 수술"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불필요한 수혈로 인해 얼마나 많은 혈액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에서의 안전하고 적정한 혈액 사용 관리를 위해 2019년 신설된 '혈액관리법' 제13조 2항은 의료기관이 혈액 사용량 정보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한다.

이종성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의료기관별 혈액 사용량 자료에 따르면, 전국 500여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지난해 한 해에만 약 140만ℓ 이상의 혈액을 사용했다. 병원에서 수혈 등 목적으로 하루 평균 3900ℓ에 달하는 혈액을 사용한 셈이다.

문제는 병원에서 이처럼 많은 혈액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혈액관리법 제9조 2항은 안전하고 적정한 혈액 사용을 위해 의료기관 내 의무적으로 수혈관리위원회와 수혈관리실을 설치·운영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직이 본연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대다수 수혈관리위원회는 혈액의 적정 사용보다는 혈액 폐기율 관리에만 치중하며 무분별한 수혈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수혈관리위원회 및 수혈관리실 설치 현황만 확인할 뿐, 혈액 사용 관리를 적절하게 수행하는지에 대한 관리·감독에는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혈액 사용량 정보를 안전하고 적정한 혈액 사용 관리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수혈관리위원회가 본연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적정한 혈액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