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유진·정은교 작가 인터뷰

"남들이 그림을 한번 볼 때 전 두번, 세번씩 봐야 해요. 그만큼 자세히, 꼼꼼히 보려고 해요."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경기 광주시 작업실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유진 작가(26)는 캔버스에 얼굴을 바짝 대고 수채화를 그렸다. 팔레트에 물감을 섞고, 굵기와 질감에 맞는 붓을 골라 들며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유 작가는 "나무가 꽃을 피우면서 계절이 바뀌는 감각을 좋아한다"며 "평소 자연을 관찰하면서 평화로운 풍경을 작품에 담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선천적 무홍채증을 가진 시각장애인이다. 교정시력은 0.1 수준이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카메라 초점이 안 맞는 것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눈이 자주 피로해지지만 틈틈이 휴식을 취하며 하루 평균 4시간씩 작업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유 작가는 예술고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했다. 하지만 졸업 후엔 미대 입시도, 취업도 쉽지 않았다. 대학 입시 시험에선 멀리 있는 조형물을 보고 그리기가 어려웠다. 시각장애인이라 디자인 분야 취직이 어려울 것이란 조언도 들었다.
그는 2022년 시각장애 예술가 에이전시 '에이블라인드'가 개최한 전시에 참여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유 작가는 "SNS에서 작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원서를 제출했다"며 "참여가 확정됐을 땐 뛸 듯이 기뻤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첫 전시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서울, 대전, 안산 등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전시에 참여했다"며 "누군가 절 찾아준다는 게 감사해서 제안을 받으면 무조건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독일 미대 유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위해 독일어도 공부 중이다. 유 작가는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섬유예술을 전공하고 32년간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일한 정은교 작가(62)는 40세에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았다. 직장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지만 55세엔 시력을 상실하면서 회사도 그만뒀다. 그는 "디자인은 눈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당시엔 '난 끝났다'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2019년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복지관을 찾아 점자를 배우고 보행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2년이 흐른 뒤 정 작가는 복지관에서 열린 촉각 미술 전시를 보게됐다. 시각장애인 관객이 작품을 직접 만지는 '촉각 명화전'이었다. 정 작가는 "전시 담당자가 촉각 미술을 해보라고 용기를 주셨다"며 "'할 수 있는데 왜 안 해?'란 마음으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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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의 작품에는 옷, 양말, 실 등 일상 속 친숙한 물건들이 등장한다. 정 작가는 직접 소재를 만져보고 가족과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배치와 색을 정한다. 그는 "재료를 몇 ㎝ 내려서 붙여달라고 하거나 정확히 어떤 색인지 물어본다"며 "직접 볼 수 없어서 어렵지만 오랫동안 색을 다뤄왔어서 이미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하루 평균 3시간씩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음성 인식 프로그램으로 작품을 구상하는 글을 쓰며 작업에 몰두한다. 지금까지 정 작가는 시각장애 작가와 팀을 꾸려 3번의 전시를 열었다.
정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냈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각이 아닌 촉각을 통해 만든 작품만이 갖는 시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꾸준히 작업하면서 예술의 다양성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