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종 좋은 까만 프렌치불독 새끼를 생산하기 위한 어미 개.
주연씨를 만나기 전 '콩지'의 쓰임이 그랬다. 혈통 좋은 강아지들끼리 교배를 시켰단다.
콩지는 새끼를 반복해서 낳아야 했다. 낳으면 데려가고, 팔고, 또 낳게 했다. 2012년 4월에 태어나 6년 동안 6번이나 그리 새끼를 낳았다.
2018년 콩지는 마지막으로 새끼를 낳았다. 그걸 팔던 인간 관점에선 쓰임이 다했다. 그러자 주인은 콩지를 경기도 파주에 버렸다. 이듬해인 2019년 2월, 한겨울이었다.
당시 콩지 몸무게는 고작 7.6㎏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 상태였다. 피부염과 외이도염(귓병)이 굉장히 심했다. 젖은 심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동안 새끼를 많이 낳은 후유증이었다.
다행히 구조가 됐다. 동물보호단체 '행동하는 동물사랑'이 콩지를 살려 보호하게 됐다.
그 무렵 주연씨는 오랜 직장을 그만뒀었다. 그 여파인지 삶이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난임으로 인해 부부 사이도 다소 소원했던 때였다. 주변에선 강아지를 키우면 어떻냐고 권하기도 했다. 반려견을 키워본 적이 없어 잘 몰랐다. 유기견에 대해서도.
"유기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문제가 있어 버려진 게 아닐까, 그런 거였지요. 프랜차이즈 펫샵에서 분양 받을까 생각도 했었고요. 철이 없었죠. 조금 더 고민하고 찾아봤어요. 강아지 공장 얘기를 알게 됐지요. 펫샵의 문제점도요."
그런 뒤엔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맘 먹었다. 보호소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보며, 입양 홍보글을 읽었다. 여러 강아지를 봤었는데, 망설이는 동안 입양이 되곤 했다.
입양 전엔 고민도 많이 했다. 뭣보다 걱정이 큰 건 이런 거였다.
"혹시 아파서 너무 일찍 헤어지면 어쩌나, 그 걱정이 제일 컸지요. 그래서 고민하는 글을 카페에 쓰기도 했었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지요."
그중 기억나는 게 있었다. 응원하던 이는 이리 남겼다. "흙으로 된 견사에서 외롭게, 홀로 아프게 무지개다리 건너게 하지 않는 거잖아요. 가족의 품에서 잘 보내주는 것도 큰 봉사에요." 그 글에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콩지 사진을 우연히 봤고, 마음에서 뭔가 불꽃이 튀었다. 새끼를 너무 많이 낳은 흔적이 있어 그게 맘 아팠단다. 입양하겠다고 신청서를 냈다. 그리 가족으로 맞게 됐다. 콩지 나이 7살 때였다.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콩지'였다. 큰 의미는 없었다. 주연씨 남편이 적극적으로 내놓은 몇 가지 이름 중, 발음이 쉬운 걸로 지었다.
집에 와서 보니 너무 의젓했다고. 주연씨는 "사고 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너무 얌전해서 좀 놀랐고 속상했다"고 했다. 의젓한 개르신(개+어르신)이 오셔서 로또 맞았단 생각이 들었단다. 배변도 너무 잘 가렸다. 사람도 좋아하는 애교쟁이였다. 6년이나 사람에게 이용당하고도. 또 쓰다듬어주는 걸 너무 좋아했다. 교감도 잘 돼 훈련도 잘 따라오는 똑똑이였다.
함께하며 콩지도 행복한지, 표정이 점점 좋아졌다. 달고 살았던 귓병도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사랑으로 돌봐준 덕분이었다.
주연씨는 그와 남편이, 콩지보다 더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낯가림 심하고, 새로운 곳 가는 것도 싫어하는 집순이였던 주연씨가 콩지를 만난 뒤엔 개모임에서 낯선 사람과도 수다 떨게 됐다. 아무한테나 말도 잘 걸게 됐다. 소통이 별로 없던 남편과도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퇴근할 땐 콩지와 산책삼아 마중도 나간다고.
그러니 콩지 덕분에 정말 많이 행복해졌다고 했다. "우리의 우주가 변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콩지와 같은, 유기견들의 행복을 위해.
"유기견이라서 어려운 게 아니에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정도의 시간을 책임지는 거잖아요. 그러니 세상 그 어떤 생명을 데려와도 어려운 거고, 신중히 생각해야 해요. 그럴 각오가 됐다면 유기견에게 그때 손을 내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럼 그 아이들도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큰 사랑을 돌려줄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