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마리의 유기동물 이야기 - 여덟번째, 보굠이] 뛰어노는 자유시간에도 물끄러미…여름이라도 쉬게하려 데려왔다가 '입양'…"어리지 않아도, 작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한 동행…유기견 바라보는 편견 깨고 싶어"

그해, 그러니까 2017년 여름, 보굠이는 경기도 파주 한 유기견 보호소에 있었다.
푹 찔듯이 무더웠기에 '생존 미용'을 해야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털을 깎는 것. 특히나 깎아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 이 계절이 다 지나도록 입양되기 힘들 것 같은 녀석들. 입양도 임시보호 문의도 별로 없어, 아마 서너 달쯤 이어질 더위를 보호소에서 견뎌야 할 유기견들.

보굠이도 털을 깎아야 했다. 파주 시골 어딘가에 버려졌다가 보호소로 온 유기견이었다. 입양이 상대적으로 더 힘든 중대형견에, 추정 나이는 당시 6살에, 별명은 '선비'였던 하얗고 털큰(털 많고 큰) 개. 그러니 여름나기를 위해 생존 미용이 필수였다.

희영씨는 보굠이가 어쩐지 신경 쓰였다고 했다. 연(緣)이 닿아 이어지는 데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뭔가 있었을 거였다.
유기견 보호소의 삶. 24시간 중 개들의 자유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단다. 견사 문을 열면, 개들은 통로에 나와 우다다다 뛰고 배변을 보았다. 그 사이 봉사자들이 견사를 청소하고 물을 갈고 밥그릇을 치우는 거였다.
보굠이는 그런데 달랐다고 한다. 희영씨 기억이 이랬다.
"다른 애들은 놀아달라, 예뻐해달라, 간식달라, 뭔가 요청하는데요. 이 아이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기만 하더라고요."
한껏 뛰놀 그 귀한 시간을, 바라보는 데에 기꺼이 다 쓴 아이. 간식이 없어도 자유시간 10분이 끝나면 견사로 돌아가던 착한 아이. 보굠이와의 시간이 쌓일수록, 희영씨는 묵직한 끌림이 생겼단다. 보호소에 들어온지 그 무렵 이미 2년이나 됐다던, 보굠이가 집에 와서도 자꾸만 생각났다고.

희영씨는 홀로 살았고, 반려동물과 함께해본 경험도 없었다. 업무상 출장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보굠이의 앞날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픈 바람이 커졌다. 적어도 지금 보호소의 삶보다는 그랬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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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번을 고민한 끝에 '임시보호 신청서'를 썼다. 그 종이에 보굠이 이름을 쓱쓱 적었다. 무더운 여름이나마 집에 데려가 쉬게 해주고 싶었다. 2017년 8월 5일, 보굠이를 마침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첫째, 다시는 보호소에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약속할게. 둘째, 최소 하루 두 번은 산책할게."
한 달 뒤 희영씨 어머니가 뇌종양 수술을 했다. 병원 면회를 갔다. 희영씨는 어머니께 보굠이 사진을 보여줬다. 이 아이를 임시보호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머니 말씀이 이어졌다.
"그게 인연인 거야. 보굠이를 입양하면 어떻겠니."

맘 속으로 입양을 생각하고 있던터라, 희영씨도 결심했다. 그의 생일인 2017년 10월 2일에 정식으로 입양을 했다. 보굠이는 그리 희영씨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2023년인 올해까지, 7년째 보굠이와 했던 두 가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보호소로 돌려보내지 않고, 산책을 매일 두 번 시키겠다고 했던. 잘 먹고 산책하니 보굠이 털도 반지르르,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한단 걸 알았다. 큰 소리에 보굠이가 움츠러들 때면, 그때마다 토닥여준다. 유치원 학부형처럼 쬐그맣고 파란 보굠이 가방을 메고, 함께 북촌에서 봄 산책을 한다. 크리스마스엔 눈 위로 발자국을 내며 걷는다. 보굠이의 해맑은 웃음에 배시시 미소가 함께 번지기도 한다고. 그리 매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희영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제가 이 아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요. 하지만 보굠이로 인해 제가 더 행복해진 게 맞지요."

보호소 봉사를 하며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졌다고. 그러면서 같은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했다고. SNS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하나다. 어리지 않아도, 작지 않아도, 품종견이 아녀도, 얼마든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단 걸 알리고 싶어서. 그리고 '유기견은 문제 있다'는 편견도 깨고 싶어서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