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이었던 2014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은진씨 동생이 그에게 말을 꺼냈다.
"언니, 우리 강아지 키울까?"
은진씨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가 강아지 털 알레르기 있잖아. 안 돼!"
그리고 며칠이 더 흘렀다. 동생이 은진씨에게 이야기를 또 건넸다.
"언니, 근데…강아지가 갈 곳이 없대. 그 가족들이 해외로 떠난다나 봐. 강아지는 안 데리고 간대."
자초지종을 들었다. 1살도 안 된 어린 스피츠 강아지였다. 둘다 직장에 다니는 젊은 부부가 키웠었단다.
텅 빈 집에서 자주 홀로 지냈을 하얀 강아지. 아직 어려 놀고픈 것도 가고픈 곳도 많았을 작은 강아지. 잘 참았건만 이젠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아, 아예 가족을 잃을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은진씨는 강아지가 맘에 걸렸다. 자꾸 신경 쓰였다. 사랑만 받아도 부족한데 파양이라니, 너무 안 됐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나 은진씨 부모님은 반대했다. 은진씨 아버지도 "네 엄마 알레르기 때문에 강아지 데려오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모른척하지 못했다. '임시 보호'로 우선 데려와보기로 했다. 부모님께도 그리 말씀드렸다. 실은 '일단 무조건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컸단다.
쫑긋한 두 귀, 하얗고 복실복실 보드라운 털, 까만 두 눈과 코. 깔끔하게 털을 깎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그리 은진씨 집으로 왔다.
녀석은 처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잘 먹고 잘 자고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만 산책 교육이 잘 안 돼 있어 쉽잖았단다. 매일 같이 뛰고, 공원에 앉아서 쉬고, 동네를 구경하며 친해졌다. 괜찮아졌다. 그럼 되는 거였다.
제일 걱정됐던 건 어머니의 '강아지 알레르기'. 은진씨는 긴장했다. 혹여나 알레르기 반응이 나올까봐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알레르기 증상이 있을 때면 "에이취, 에취"하면서 재채기를 했었다.
그런데 은진씨 어머니가, 강아지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전혀 없었다. 가족들 모두 신기해했다. 천상 가족이 될 인연(因緣)인 거였다.
강아지는 자연스레 은진씨 가족이 됐다. 가족들 모두 강아지를 무척 예뻐했다.
한 달쯤 지나니 강아지 표정이 달라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웃기 시작했단다. 그 무렵 강아지의 예전 가족들에게 연락도 왔었다. 강아지가 잘 있느냐고. 은진씨가 말했다.
"(전 주인이) 울먹이며 물어보시는데…강아지가 너무 잘 있어서 미안할 정도였어요(웃음)."
강아지 이름도 지어주었다. 뭘로 지을지 다들 머릴 맞대고 고민할 때였다. 부엌에서 갑자기 "쿠쿠하세요, 쿠쿠"하며 밥을 다 지었단 기계음이 들렸다. 그 소리에 은진씨가 말했다.
"쿠쿠 어때?"
쿠쿠로 시작한 이름 짓기는, 여러 가족들의 마음을 통과해 '꾸꾸'가 됐다. "꾸꾸, 꾸꾸야" 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부르는 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 평생 다정하게 부르고 또 불러줄 이름이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 나날들. 멋내는 걸 좋아하던 꾸꾸. 목걸이하고 모자 쓰고 몸에 하는 건 다 좋아하고, 그럴 때면 예쁘게 웃던 작은 존재. 간식은 정말 다 먹지만, 맛 없으면 뱉는 취향이 확실한 강아지. 장난감 던져주면 가지고 가서 물어오는 걸 헥헥대며 좋아하는, 너무너무 예쁜 가족.
그러나 어느 생(生)이나 부침이 있듯, 꾸꾸와의 행복한 시간에도 힘듦이 섞였다.
꾸꾸가 태어날 때부터 잇몸이 좋지 않았는데, 종양이 생겼다. 지난해 11월엔 아래턱을 자르는 수술까지 했다. 항암 치료도 4차까지 했다. 이후로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이 여부를 검사하고 있단다.
인형 물고 오는 걸 좋아하던 아이가, 처음엔 턱이 안 다물어지니 당황해하며 은진씨를 바라봤단다. 3개월 후부터는 다행히 작은 건 물 수 있게 됐지만.
은진씨는 맘 아파 꾸꾸를 꼭 안고 두 달간 매일 울었다. '우리 집에 괜히 데리고 온 걸까, 더 좋은 가족을 만났음 괜찮았을까' 생각도 했단다. 그런데 꾸꾸가 우는 은진씨를 신경쓰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맘을 굳게 먹었다. 건강했던 때처럼 아무렇잖게 대했다.
"그러니 수술하고 한동안 웃지 않던 꾸꾸도, 다시 웃더라고요. 컨디션도 좋아지는 것 같고요."
지금도 전이 여부 검사하러 가기 전날이면 잠도 설친다. 그래도 은진씨는 이리 다짐한다. 꾸꾸야, 누나랑 여행도, 좋은 곳도 많이 가자고. 종양 따위 이겨내버리자고. 우린 할 수 있다고. 함께니까.
힘들었던 날들도 함께였다. 은진씨 외할머니가 치매가 심하게 왔다. 함께 있을 때면 화내고 욕을 했다. 유독 은진씨와 있을 때만 그랬다.
그걸 다 보고 있던 꾸꾸.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면 멍멍 짖었다. 우리 누나에게 그러지 말라는 듯이. 할머니는 그런 꾸꾸에게까지 화를 내고 문을 쾅 닫았다. 은진씨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몸이 떨렸다. 꾸꾸를 안고 방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를 이리 회상했다.
"곁에 있는 꾸꾸를 보면 안정이 됐어요. 그 덕분에 견딜 수 있었지요. 언제나 저를 지켜주고 옆에 있어준 고마운 동생, 비타민 같은 존재에요. 힘들 때 같이만 있어도 힘이 돼요. 기분이 좋아지고, 안고 있으면 편해져요. 저도 힘이 되고 지켜줘야겠다고 다짐했지요."
끝으로 꾸꾸에게 하고픈 말을 들려달라고 했다.
"내꾸! 내 절친 꾸꾸야. 매일매일 틈만 나면 네게 자고 있을 때도 하는 말이지만, 또 하고 싶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