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 아니다 ."
추석 연휴 첫날이던 1994년 9월 21일. 살인 범죄집단의 잔혹한 범죄 소식은 화기애애하던 명절 밥상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전국 곳곳에서 소각 암매장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해가며 5명을 살해한 살인 범죄집단 '지존파' 일당 7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검거된 이들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드는 등 시종일관 당당함을 보였다. 심지어 미소를 띠며 "어머니도 내 손으로 못 죽인 것이 한이 된다" "부자들을 더 못 죽여서 한이 된다" 등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발언을 내뱉기까지해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18세 미성년자를 포함해 평균 나이 21세인 지존파 조직원 중 살인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사형을 선고 받고, 1995년 11월 형이 집행됐다.
지존파의 범죄는 우발적인 게 아니었다. 이들은 조직을 결성한 지 한 달여 만에 첫 살인을 저질렀는데, 조직 단결을 위해 산에서 1주일간 물과 풀뿌리만 먹는 '지옥 훈련'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존파 조직원들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두목 김기환의 어머니 집을 고쳐 약 170평 규모의 '살인공장'까지 건축했다. 이웃들에게는 어머니를 모실 집을 짓는다며 효자 행세했다.
겉보기엔 평범했던 이 주택 지하에는 쇠창살로 만들어진 감옥과 시신을 태울 소각장이 있었으며 총과 칼등 각종 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경찰이 이들을 검거할 당시 아지트에서 발견된 무기는 다이너마이트부터, 가스총, 대검, 전기 충격기 등 다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존파의 범행 목표는 고급 승용차를 탄 '부자'였다. 이들은 고급 승용차에 탄 남녀 2명을 납치해 남성을 살해한 후 음주운전 사고로 위장했다.
지존파는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씩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의 행동 강령을 갖고 범행을 지속했다.
부유층에 대한 증오감을 가진 이들은 무차별적인 살인을 이어 나갔다. 이들은 경찰에 검거되기 전까지 최소 5명의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조직원인 김현양은 이때 '인간이길 포기하기 위해서' 식인을 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범죄는 일당에 납치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여성 A씨가 자신이 겪은 일을 경찰에 알리며 세상에 드러났다.
이들이 당초 경찰에 밝힌 범행 목적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증오였지만, 실제 피해자는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 대다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검거된 지존파 일당은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불특정 다수를 범행 대상으로 선정해 잔혹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했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소각로까지 설치해 사체를 태운 것으로 볼 때 인간이길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뉘우침의 기색마저 없는 이들을 우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에 지존파 조직원 7명 가운데 범죄 단체 가입 및 사체손괴죄를 적용받아 징역 5년을 구형받은 이경숙을 제외한 6명은 1995년 11월 3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들의 사형 집행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였으며 1994년 10월 6일 사형수 15명의 형을 집행한 지 1년 1개월 만이었다. 사형을 집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형폐지를 주장한 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