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산불은 강원 양양군의 천년고찰 낙산사를 집어삼켰다. 황량한 잿더미 속 터를 파내니 6·25 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낙산사 돌담 파편이 발견됐다. 조선 후기, 6·25 전쟁 때 사라졌던 낙산사의 '진짜 모습'을 발견·복원하는 계기가 됐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문화재 복원 과정에서 소실 직전 모습 재건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일 오전 낙산사에서 만난 이광복 도편수(대목 제2236호)는 "당시 (낙산사가 지어질 당시) 원형과 가장 근접하게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도편수는 27년차 한식목공이다. 2005년 양양 산불 당시 낙산사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화재로 훼손됐던 정취전, 설선당 등 전각들이 이 도편수의 손길을 통해 복원됐다. 뉴욕 원각사 대작불사 공사를 주도했고, 영국 대영박물관 한국실 공사에도 참여한 현장전문가다.
낙산사는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자세히 살피면 화재의 상흔들이 남아있었다. 칠층석탑에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았고 나무는 불에 타 밑동만 남았다. 2005년 4월4일 밤 낙산사에서 4.99㎞ 떨어진 지점에서 발화한 산불은 빠른 속도로 번져 이튿날 오후 낙산사를 덮쳤다. 같은 달 6일 오전 불길이 잡혔지만 89억원 상당의 문화재가 훼손됐다. 원통보전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보물 479호 동종도 흔적도 없이 녹았다.
낙산사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 조선 후기, 한국전쟁 직후, 2000년대 모습이 모두 달랐다. 이 도편수는 급하게 복원할 것이 아니라 여러 조사를 거쳐 조선시대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18세기 화가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가 복원의 토대가 됐다.
이 도편수는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구(절터)를 확인하니 낙산사도 속 그림과 비슷한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낙산사도가 그려진 18세기 유적도 참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강릉문묘 대성전과 오죽헌, 순천 송광사 등을 참고해 복원이 진행됐다.
복원 과정에서 6·25 전쟁으로 소실됐던 문화재도 발견됐다. 발굴조사로 6·25 전쟁 시 화재로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이 발굴됐다. 자문위원들은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통해 해당 돌로 구성된 돌담이 18세기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발굴된 돌은 치수와 간격이 일정해 부족한 돌만 유구에 맞춰 추가했다.
딱 들어맞는 재료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빈일루 안에 휘어진 나무로 만든 장식을 복원하려고 비슷한 형태의 나무를 수소문했다. 때마침 복원 공사 중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가 있다는 소식에 모양을 대조해 보니 장식 형태와 정확히 일치해 쓸 수 있었다.
복원 과정에서 추가한 요소도 있다. 복원 당시 모티브로 삼았던 순천 송광사에 있던 거북이 그림을 낙산사 건물에도 그려 넣은 것이다. 거북이가 사는 바다에선 불이 나지 않는 만큼, 다시는 산불로 인해 낙산사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이 도편수는 "원형대로 돌려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와 염원을 담은 요소를 넣는 것도 복원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양양군에 따르면 낙산사 문화재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총 90억9700만원 상당의 비용을 투입해 복원됐다. 이후 주변 정비사업과 화재 예방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을 거쳐 2012년 12월 복원이 최종 완료됐다. 만 7년이 꼬박 걸렸다.
이 도편수는 영남 산불로 고운사가 전소된 데 대해 "사진 자료 및 실측 도면을 참고해 원형 복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대형 산불에 취약한 점이 없도록 산불 대응 시스템이 보다 합리적으로 보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