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없는 판례 '척척' AI, 로펌마저 속았다...패소한 의뢰인이 알아채

[단독]없는 판례 '척척' AI, 로펌마저 속았다...패소한 의뢰인이 알아채

박진호 기자, 이혜수 기자
2026.05.12 04:24

사건번호 없는 허위판례 인용 정황… 법조계 신뢰 훼손 우려
해당 로펌 "확인절차 누락, 의뢰인에 사과" 검증 미흡 인정

법원행정처 사법정보공개포털의 '허위 사건번호 확인' 서비스. 판례에 인용된 대법원 '2009다103436'을 입력하자 "사건번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 문구가 나왔다. /사진=사법정보공개포털 캡처.
법원행정처 사법정보공개포털의 '허위 사건번호 확인' 서비스. 판례에 인용된 대법원 '2009다103436'을 입력하자 "사건번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 문구가 나왔다. /사진=사법정보공개포털 캡처.

최근 한 민사소송 과정에서 AI(인공지능)가 만든 '가짜 판례'를 로펌 소속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가짜 판례'엔 법령이나 학설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논리가 포함됐다. 법조계에서는 생성형 AI 활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면 재판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울산지법에서 선고된 한 대여금 반환 소송 과정에서 피고 측 준비서면에 '허위 판례 인용' 정황이 확인됐다. 피고 A씨 측은 1심 패소 이후 소송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정황을 발견했다.

우선 존재하지 않는 판례번호가 인용됐다. 서면에는 "대법원 2009다103436 판결 등을 참조했다"며 특정 법리를 제시했지만, 해당 판례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의 허위 사건 확인 서비스에서도 "사건번호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허위 정보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 판례의 선고일자를 잘못 기재한 사례도 있었다. 준비서면에는 '2001다33604' 판결을 인용하며 "2001년 11월27일 대법원 선고"라고 적혔지만, 실제 선고일자는 같은해 12월11일이었다. 비슷한 오류는 2곳 더 발견됐다.

특히 인용한 판례 내용이 실제와 다르게 왜곡된 경우도 있었다. 서면에서는 "법인 대표자가 개인 명의로 소송을 수행한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법인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라면 그 판결의 기판력은 법인에도 미친다"는 판시가 있다며 한 판결문을 적시했지만, 인용된 판례는 해당 내용과 무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돈호 법무법인 노바 대표변호사는 "법인대표자 개인 명의로 수행된 소송의 기판력이 법인에 미친다는 이론은 법령, 학설, 판례 그 어디에도 없다"며 "받아들여질 수 없는 법리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피고 측 주장의 전반적인 신빙성을 떨어뜨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승일 솔루젠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국내에서는 법인격이 부정되더라도 곧바로 '기판력이 확장'됐다고 보지 않는 점은 정설로 굳어진 유명한 판례인데, 담당변호사가 AI를 통해 입장에 부합하는 판례를 찾다가 별도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아 발생한 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이번 의혹을 전형적인 'AI 환각 판례 인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생성형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법리를 실제처럼 만들어냈고, 이를 검증 없이 서면에 반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법원도 AI 기반 허위 판례 인용 문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서 존재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를 소송대리인이 제출해 재판부가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A씨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측은 의혹에 대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면서도 "AI를 활용해 판례를 검색·정리하는 과정에서 재차 확인하는 절차가 누락됐고 대표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사과했다"며 AI 활용 과정에서 검증이 미흡했던 점을 인정했다. 또 "현재는 판례번호와 법률 조항을 별도로 대조 검증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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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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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이혜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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