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옷, 온몸엔 '멍' 자국…남고서 발견된 여학생 시신, 무슨 일이[뉴스속오늘]

전형주 기자
2025.05.14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7년 5월14일. 경기도 수원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옷차림은 허름했고, 운동화도 너덜너덜했다. 사진은 소녀 소지품.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2007년 5월14일. 경기도 수원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옷차림은 허름했고, 운동화도 너덜너덜했다.

경찰은 신원확인을 위해 수사력을 모았지만, 결국 성과를 얻진 못했다. 소녀 시신이 생뚱맞은 남학교에서 발견됐을뿐더러, 미성년자라 지문을 채취해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소녀를 노숙인으로 의심한 경찰은 수원역 등을 탐문한 끝에 29살 정씨와 강씨가 소녀를 폭행한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진술 내용은 이랬다.

"살해당한 소녀는 노숙자 대장의 돈을 훔치다가 발각됐고, 이 대장이 부하를 시켜 소녀를 구타하다가 소녀가 사망하자 시체를 고등학교 건물에 내다 버렸다."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던 정씨와 강씨 등 2명을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했다. 정씨와 강씨도 범행을 인정했다. 둘은 경찰 조사에서 소녀가 돈 2만원을 훔쳤다고 착각해 40분 동안 때렸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2007년 8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돼 복역했다. 정씨와 함께 범행한 강씨는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피고인들 진술 번복…증거도 없었다
소녀를 노숙인으로 의심한 경찰은 수원역 등을 탐문한 끝에 29살 정씨와 강씨가 소녀를 폭행한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일단락된듯 했던 이 사건은 이듬해인 2008년 1월 '주범'이 있다는 신고로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정씨와 강씨가 단순가담자일 뿐, 소녀를 숨지게 한 진범은 가출 청소년 5명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에 붙잡힌 일당은 모든 혐의를 시인했고, 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이 시작되자 일당은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계속 혐의를 부인하면 상해치사 대신 살인죄를 적용하겠다'는 경찰과 검찰의 강요에 의해 허위 자백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검찰은 난감했다. 진술 말고 어떠한 증거도 없어서였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 기록에서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됐다. 수사관이 피의자의 자백을 유도하는가 하면, 유도 신문을 한 내용이 확인됐다. 가출청소년 5명 모두 수사관의 질문에 "네"라고만 답했지만, 진술서에는 자세하게 범행을 설명한 것처럼 적혀있었다. 심지어 피의자 한명은 사건 당일 수원에 없었다.

앞서 진범으로 지목됐던 정씨와 강씨도 이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수원역에서 돈 2만원을 놓고 실랑이를 빚은 여성은 숨진 소녀가 아닌, 다른 노숙인이었다.

하지만 그해 7월 1심에서는 촉법 소년 1명을 제외한 가출 청소년 4명에게 징역 2~4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찰이 과학수사를 통해 물적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관련자들의 진술 신빙성과 검찰에서의 자백 상황 등을 검토한 결과 범행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시했다.

피고인 전원 무죄
피고인 현장 검증 당시 범행 현장을 설명해주는 경찰들. 이로 인해 유도 신문을 한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피고 측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1심 판결에 항소했다. 검찰과 법정 공방 끝에 2009년 1월 항소심에서 피고인 전원 무죄 판결을 끌어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수사기관이 제공한 사진을 본 이후에야 정황에 맞춰 진술을 한 점, 당시 학교 정문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에 모습이 전혀 찍혀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고 했다.

대법원도 2010년 7월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박 변호사는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믿었는데, 결국 억울한 누명을 벗게 돼서 너무 다행"이라며 "이번 사건은 정신지체인들을 폭행·협박해 허위 자백을 얻어낸 경찰과 청소년들을 회유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조작한 검찰이 만든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검찰은 '다른 공범들이 이미 자백했으니 부인하면 혼자 가중처벌 받는다'며 회유했고, 사건 현장을 가보지도 않은 청소년들에게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세부사항을 먼저 언급한 뒤 조서를 꾸몄다"고 비판했다.

억울한 옥살이, 형사 보상 결정
사망 당시 소녀가 갖고 있던 소지품들. /사진=수원남부경찰청

가출 청소년 5명 전원이 무죄를 받으면서 이 사건 범인으로 남은 것은 정씨와 강씨뿐이었다. 특히 정씨는 가출청소년들이 모두 풀려나고도 2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정씨는 우여곡절 끝에 재심을 신청했고, 대법원은 2012년 6월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0월 정씨의 상해치사 혐의는 무죄로 뒤집혔다. 정씨와 같은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강씨도 다음해인 2013년 무죄를 받았다.

이미 만기 출소한 상태였던 정씨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2015년 3월 서울고법에서 1억3100만원의 형사보상 결정을 받아냈다.

가출청소년 5명도 정부와 손해배상소송에서 "100만원에서 2400만원까지 모두 1억2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2014년 공소시효 만료…영구 미제로 남았다
2011년 한 방송에서는 소녀가 사건 며칠 전 온라인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가 귀중품을 절도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진범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피해자인 소녀는 수사기관 발표와 달리 노숙인이 아닌, 15살 중학생이었다. 진범의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2011년 한 방송에서는 소녀가 사건 며칠 전 온라인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가 귀중품을 절도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진범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다룬 인터넷 기사에는 "천안에서 가출 청소년 세 명을 만나 동행했는데, 이들이 소녀를 때려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경찰은 이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재수사에 돌입했지만, 2014년 공소시효 만료로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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