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0억 달러, 세계 최대 규모의 파산'
2008년 9월 15일 미국 뉴욕. 158년 역사를 자랑하던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Holdings)가 뉴욕 법원에 연방 파산법(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 청산 대상 자산은 6390억 달러. 당시 원·달러 환율(1108원)로 따지면 한화 708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파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는 당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웃도는 엄청난 규모였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는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와 함께 '4대 투자은행'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금융회사였다. 19세기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리먼 3형제가 만든 이 회사는 목화 무역으로 출발해 20세기 미국 산업화를 토대로 빠르게 성장했다. 불모지였던 M&A(인수·합병) 시장을 개척했고, 2000년대 들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기반 파생상품(MBS)을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급등하던 미국 부동산 시장이 횡보하기 시작하더니 2007년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등급을 3단계(프라임·알트마이너스·서브프라임)로 나누고 있었는데,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서브프라임 등급에서 '채무불이행'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1%대 였던 기준금리가 2005년 5%까지 올라 이자 부담도 늘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추락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리만 브라더스의 파생상품 가치는 급락했다. 기초 자산을 토대로 레버리지(차입투자)를 활용하는 파생 상품의 특성상 대규모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7년부터 '부동산 위기론'이 대두됐지만, 뒤늦게 수습하기에는 붕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였다. 파산 신청 다음날 미국의 대표 증시인 S&P500 지수가 4.7% 하락하며 1192포인트를 기록했다. 이후 S&P 500 지수는 2009년 3월까지 계속해서 빠져 667포인트까지 내려갔다. 미국 경제당국은 사태 수습을 위해 기준 금리를 2008년 12월 0%대로 빠르게 내렸다. 이후 '제로(0)금리' 시대가 시작 된 것도 리먼 브라더스 때문이었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다. 리먼 브라더스에 돈을 빌려준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같은 거대 금융사들도 정부 구제금융에 기대야 했다. 리먼 브라더스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시티그룹이었는데, 그 금액이 1380억 달러(당시 기준 152조원)에 달했다. 리먼 브라더스가 이 파생 상품의 보험을 든 AIG도 파산 위기를 겪고 구제금융을 받았다.
파산절차에 따라 리먼 브라더스는 쪼개져 다른 금융사들에 팔렸다. 영국 바클레이즈가 뉴욕 본사와 북미 사업을 사들였고, 일본 노무라증권은 아시아와 유럽 사업을 인수했다. 한국 KDB산업은행도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검토했지만 결국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결과적으로 한국은 '최악의 거래'를 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이를 인수했더라면 7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채무를 감당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몰락을 넘어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을 드러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이 '빅쇼트'와 '마진콜' 등 이다. 이 영화에선 과도한 레버리지와 불투명한 파생상품 등이 맞물리면 얼마나 큰 후폭풍이 벌어지게 되는지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