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 직원들은 매일 기술유출의 유혹과 싸운다. 고액 연봉으로 유혹해 경쟁업체로 이직을 꼬드기는 헤드헌터뿐만 아니다. 기업 내부 경쟁에서 밀려 '먹고 살기 위해'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엔지니어도 있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비밀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해 실형을 피해간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해외 기술 유출 사범 검거 건수는 2022년 12건에서 지난해 2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 1건에 불과했던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은 지난해 11건으로 폭증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첨단 기술이 표적이 됐다.
고액 연봉, 약한 처벌이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는 주된 이유로 꼽히면서 산업기술유출 수사 전문가와 보안업계는 '내부 경쟁에서 밀린' 직원들이 기술유출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고 분석한다. 피해기업이 보안 정책을 강화하고 관련 교육을 진행해도 유출 시도가 꾸준히 이뤄진다는 취지다.
기술유출 헤드헌터들도 국내 기업 엔지니어의 '2·3인자'를 노린다.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업황 악화로 일부 핵심 직원만 주요 보직에 앉히려는 회사 정책에 뒤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헤드헌팅 표적이 된다고 한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재원이 한정적인만큼 일부 엔지니어에게 높은 연봉과 혜택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올해 1월 이차전지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법원에 넘겨진 국내 주요 대기업 배터리 회사 전·현직 임직원들도 내부 경쟁에서 밀린 엔지니어들이었다. 국내 기업에서 미래 계획을 꾸리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중국 경쟁사는 현재 연봉의 최소 2배 이상을 지급하겠다고 접근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부의 2인자 등 경쟁에서 밀린 직원들을 잘 챙겨야 하는 이유"라며 "이들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지만 국내 산업을 위해 이바지한 공로가 있는만큼 회사 차원의 인정과 적절한 감시 등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유혹에 넘어가 잡히더라도 대가도 크지 않다. 수사기관에서 기술유출 정황을 철저히 수사해 법원에 넘겨도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적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처벌 대상과 벌금·손해배상액이 확대됐지만 공허한 외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자들은 재판에서 '국가핵심기술, 영업비밀이 아니다'는 주장으로 형량을 낮춘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국내 장비업체 무진전자 부사장 신모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씨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법원에 넘겨졌다. 무진전자 연구소장과 영업그룹장은 각각 징역 1년6개월, 품질그룹장은 징역 1년, 기구설계그룹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유출·사용이 입증된 영업비밀·산업기술 부분은 유죄로 인정했지만 일부 기술은 국가핵심기술과 첨단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기술 유출 행위는 유죄지만 유출된 기술이 핵심 기술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같은 사건 2심은 세정공정의 '케미컬별 식각비율' 정보와 BI 공정의 '적층 구조·공정 정보'가 논문과 특허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수준이라며 국가핵심기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영업비밀성은 인정하나 국가핵심기술 또는 첨단기술을 부정하는 판결이 많다"며 "국가핵심기술이 인정되면 5~6년의 실형이 나오지만 인정이 안 되면 고작 1~2년이 선고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어 "기술유출 사건 특성상 기존 사례가 부족해 구성요건 판단과 관련해 법원과 견해 차이가 있으나 수사역량을 강화하고 공소유지를 충실히 해 유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