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초특급열차.'
1969년 2월8일 오후 1시 20분. 대한민국 철도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시운전'이 시작됐다. 한국전쟁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 시절 산업화 기지개를 켜던 대한민국이 야심 차게 준비한 초호화 특급 열차 '관광호'가 서울역에서 부산을 향해 첫 운행을 시작했다. 관광호는 단순한 신규 열차 도입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을 꿈꾸던 한국 사회 열망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개통된 일본 신칸센은 한국인들에게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 정부와 철도청은 관광호 도입을 추진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열차였지만 운행 방식과 내부 구성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관광호는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기관차 전면부는 당시 세계 최고 고속열차였던 일본 '신칸센'을 본떠 둥그스름한 유선형으로 개조됐다.
기존의 각지고 투박한 열차와는 차별화를 뒀다. 내부는 더 화려했다. 당시 가정집에선 보기조차 힘든 에어컨(냉방 시설)이 객차마다 설치돼 있었고 차축 발전기가 아닌 전용 발전차를 연결해 전력을 공급했다.
특등칸은 '달리는 궁전'이란 평가받을 정도였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 좌석마다 승무원을 호출할 수 있는 초인종과 독서등이 구비돼 있었다. 한국 철도 최초로 등받이 조절(리클라이닝)과 회전이 가능한 최고급 시트가 적용됐다. 식당칸인 살롱카와 비즈니스 룸까지 갖춘 이 열차를 두고 당시 언론은 '달리는 응접실' 혹은 '꿈의 열차'라 평가했다.
관광호는 철저히 외국인 관광객과 극소수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움직이는 사치품'이었다. 당시 책정된 운임은 서울-부산 간 특등칸 요금은 4700원이었다. 이는 당시 직장인 월급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당시 쌀 한 가마니(80㎏)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라 일반 서민들에게 관광호는 평생 한 번 타보기도 힘든 열차였다.
다만 너무 비싼 요금 탓에 개통 초기에는 좌석의 4분의 1밖에 채우지 못한 채 '공기만 싣고' 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이에 철도청은 개통 4개월 만에 요금을 인하했다.
관광호는 운행 5년 만인 1974년 8월15일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범국가적이었던 새마을운동 기치를 내걸고 '새마을호'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새마을호는 1980년대 중반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1985년 선로 개량을 통해 서울-부산 주파 시간을 4시간 10분대까지 단축하며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는 데 기여했다. 새마을호 식당칸에서 음식을 먹으며 가족 여행하는 모습은 '성공한 중산층' 상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특급 열차 새마을호 자리는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저물기 시작했다. 최고 시속 300㎞로 달리는 KTX는 서울과 부산을 2시간 30분대로 연결하며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혔다.
새마을호 서울-부산 간 주력 노선은 KTX에 내어주었고, 새마을호는 KTX가 서지 않는 역들을 연결하거나 지방 노선을 운행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밀려났다. 노후된 새마을호는 201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새마을호 이름은 2014년 도입된 ITX-새마을이 계승하고 있다. ITX-새마을은 최고 시속 150㎞ 전기동차(EMU-150)로 KTX와 무궁화호 사이를 메우는 급행열차다.
관광호 도입은 한국 철도 서비스 선진화와 함께 새마을호, KTX로 이어지는 초고속 열차 시대를 열었고 세계적인 철도 강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KTX-산천', 'KTX-이음' 등 독자 초고속 모델을 개발했고 2024년에는 순수 국내 기술로 'KTX-청룡' 제작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