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사법개혁, 의료개혁, 농협개혁. 개혁이 끊이질 않는다. 곳곳에서. 예나 지금이나. 개혁 대상은 언제나 강자다. 약자를 개혁하진 않는다. 보통 권력을 가진 조직을 쪼개거나 권한을 나눠 힘을 잃게 한다.
공무원 인사권을 가진 내무부나 행정자치부가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로 나뉘는 식이다. 공무원 규모가 커지고 업무가 복잡해진 것도 이유겠지만 공무원 인사권이 막강해서다. 기획재정부가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경제 정책과 조세 정책은 물론 예산권까지 가지면서 기획재정부는 '공룡'이라는 말을 들었다. 재정경제부가 금융 정책을 담당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논의도 있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효율'보다 '힘빼기'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인사권이든 예산권이든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부침이 적었던 행정부 기관이 있다. 바로 검찰청이다. 검찰청은 올해 10월 77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사라진다. 정부는 검찰청을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쪼개는 법안을 발표했다. 조만간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검찰에 앞서 수많은 권력기관이 개혁됐다. 우선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이 가지고 있던 권한이 점점 사라졌다. 하나회 척결은 시작이었다. 기무사령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국군방첩사령부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기능이 축소됐다. 12.3 계엄사태로 방첩사는 아예 사라질 예정이다. 국가정보원도 과거에 비하면 힘이 약해졌다. '남산'으로 불린 '국가안전기획부'는 국정원으로 바뀌면서 '공작'이 사라졌다. 2024년엔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완전히 넘겼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직후 막강했던 경찰도 여러 개혁을 통해 힘을 잃었다. '경무부'로 다른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적도 있었으나 내무부 산하의 '치안국', '치안본부'로 격하했다. 1987년 민주화의 봄을 거쳐 1991년 '경찰청'으로 독립했다.
검찰의 힘은 기소와 수사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서 나온다. 수사권은 경찰 등 여러 곳이 가지고 있어 견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독점적인 기소권은 견제가 어려웠다. 헌법에 검사의 기소권이 비교적 명확하기에 기소권을 검사가 아닌 사람에게 나눌 수도 없었다. 검찰처럼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었지만 검찰을 견제하기엔 너무 작았다. 검찰개혁 과정에서 보완수사권을 두고 논의가 끊이질 않는 것도 기소권 독점을 어쩌지 못해서다.
게다가 검찰은 '검사동일체'다. 검찰청법 7조는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4년 법 개정 전에는 조항 자체 명칭이 '검사동일체의 원칙'이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라고 적혀있을 정도였다. 공권력의 핵심이 거대한 한 조직에 집중돼 있다보니 개혁이 필요했고 오래 걸렸다.
사법부도 개혁을 앞두고 있다. 대법관 증원 논의가 잠시 주춤하지만 언제 격화할지 모른다. 다만 개혁에 앞서 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법기관'이라는 대전제는 남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전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제대로란 재판에 법과 양심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도, 대법원장도, 친구도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줘서도 안된다.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은 법과 양심 이외의 것이 재판에 영향을 줬다는 이유로 문제가 됐다.
행정부, 사법부만 개혁하면 끝일까. 국민은 국회도 볼 것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 등 권한도 많다. 권한이 많은 만큼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청렴의 의무를 부여했다. 하지만 돈을 주고 받는 등 청렴하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다. 개혁을 부르는 이유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관료제를 논하면서 "효율성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는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켜라"라고 했다. 국회도 예외가 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