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실제로 근로를 제공했는지 따져보지 않고 임금 지급 의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임금청구권은 원칙적으로 근로 제공을 통해 발생한다는 취지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최근 송모씨가 "임금을 지급하라"며 익산YMCA 전직 이사장들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송씨는 익산YMCA 전직 이사장들과 2010년 12월5일부터 2023년 12월5일까지 매월 기본급 250만원과 업무추진비 50만원을 받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이후 송씨는 2017년 1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체불 임금 99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가 전직 이사장들로부터 임금 지급 확약서를 받고 소를 취하했다.
확약서에는 전직 이사장들이 체불 임금 9900만원을 지급하고 송씨를 2021년 12월까지 재직하게 하며, 송씨는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모두 취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송씨는 확약서상 약정금 중 일부를 지급받지 못하자 2020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임금 9600만원이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송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원심은 송씨가 실제 근로를 제공했는지와 관계없이 근로계약이 체결된 이상 피고들이 2020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의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쌍무계약이라고 규정했다. 특별한 약정이나 관습이 없는 한 임금청구권은 근로자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해야 발생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이상 그 대가관계인 임금청구권을 갖지 못한다"며 "원고가 실제 근로를 제공했는지 심리·판단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정만으로 임금청구권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2020년 12월 작성된 확약서의 의미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확약서는 당시까지 발생한 체불 임금과 관련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송씨와 피고들 사이의 근로계약은 확약서에 기재된 2021년 12월쯤 종료됐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고 했다.
이어 "원심은 원고가 실제 근로를 제공했는지, 근로계약 기간이 언제까지인지에 관한 심리·판단 없이 근로계약 체결 사실만으로 임금 지급 의무를 인정했다"며 "임금청구권과 처분문서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