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금이 삼킨 30년의 꿈···청호나이스 사태가 우리에게 묻는 것

허시원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2026.05.14 18:36
[편집자주] [the L]화우 자산관리센터 전문가들이 말해주는 '상속·증여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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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서울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된 청호나이스는 정수기 렌털 시장의 선두주자로 성장하며 어엿한 연매출 7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창업주인 고 정휘동 회장의 피와 땀으로 일군 이 회사가 최근 미국계 사모펀드(PEF) 칼라일과 매각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매각의 배경은 단순하다. 정 회장이 지난 해 6월 향년 67세로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유족들에게 부과된 상속세 3000억원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50%다. 그런데 최대주주의 주식을 상속받는 경우 20%의 할증이 붙어 실효세율은 60%에 달한다. 이는 일본(55%), 프랑스(45%), 영국(40%)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청호나이스 창업주 지분(약 75%)의 평가액만 3600억원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유족이 떠안아야 할 세금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이 사건을 보고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8조의2는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받는 경우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를 공제하되, 피상속인의 경영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 원 한도로 공제를 허용한다. 그러나 이 제도에는 넘기 쉽지 않은 장벽이 즐비하다.

우선 상속 개시일 직전 3개 사업연도 매출액 평균이 5000억원 미만인 중견기업 또는 자산총액 5000억원 미만 중소기업만 적용 대상이다. 피상속인은 10년 이상 최대주주로서 지분 40% 이상을 보유하면서 대표이사를 오랜 기간 역임해야 하고, 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하다가 신고기한 내 임원 취임 및 2년 이내 대표이사 취임까지 마쳐야 한다.

사후관리도 만만치 않다. 공제를 받은 뒤 5년 이내에 가업용 자산을 40% 이상 처분하거나 고용을 90%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업종을 바꾸면 공제받은 세금을 이자까지 얹어 토해내야 한다.

청호나이스의 경우 위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기도 어렵다. 설령 요건을 충족한다 해도 기업 가치가 수천억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최대 600억원의 공제는 전체 세부담의 일부를 덜어줄 뿐이다. "주식을 팔지 않고는 세금 낼 돈이 없다"는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불가피하게 비교하게 되는 것이 삼성 이재용 회장의 사례다. 고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이재용 회장 등 유족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약 12조원이다. 2021년부터 5년에 걸쳐 연부연납 방식으로 분할 납부하여 올해 납부가 완료되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 지배구조를 지키기 위해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계열사 배당금과 개인 신용대출로 세금을 마련했다.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두 사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삼성은 계열사 배당금만 수조 원에 달하지만 청호나이스 유족은 세금을 낼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현금 창출 구조 자체가 다르고, 정휘동 회장이 갑자기 별세하는 바람에 유족들이 상속을 준비할 시간적 여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때문에 청호나이스 유족들에게 경영 승계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청호나이스처럼 수십년간 일군 토종 기업이 외국계 사모펀드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상속세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적어도 가업상속공제 한도의 현실화, 연부연납 기간 확대, 사후관리 요건의 합리화만큼은 서둘러야 할 과제다. 기업가 정신이 세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법과 정책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다.

허시원 법무법인 화우 자산관리센터 변호사·공인 회계사/사진=법무법인 화우

허시원 변호사는 2013년부터 법무법인(유한) 화우 조세그룹에서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각종 조세 분야의 쟁송·자문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화우 입사 전에는 삼일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 근무하며 회계·재무 관련 실무경험을 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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