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밋빛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후보자가 선거 운동 기간에 내건 선거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거나 민사상 책임을 지긴 어렵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선거 공약은 법적 의무라기보다 유권자와의 정치적 약속에 가깝다. 일반적인 계약처럼 특정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보자가 제시하는 공약은 당선 이후 추진할 정책 방향과 목표를 밝히는 성격이 강하다. 실제 정책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는 물론 정부와 국회의 협조, 관련 법령 개정 등 다양한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약을 일률적으로 법적 의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설명이다.
실제로 유권자가 공약 불이행을 이유로 정치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0년 총선 당시 이한동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구성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선거 이후 민주당과의 공조를 복원하고 국무총리직을 수락했다. 이에 한 유권자는 공약을 믿고 투표했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2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치인이 유동적인 정치 현실에 따라 공약을 파기한 것이 이를 신뢰한 사람들에게 배신감이나 불쾌감 등 정신적 고통을 줄 수는 있지만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을 인과관계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지만 국민 개개인과 구체적인 권리·의무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론이나 투표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추궁할 수는 있어도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직선거법 역시 후보들의 공약 불이행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후보자가 당선 이후 공약을 추진하지 않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공약 이행 여부는 법원이 아닌 유권자가 판단할 영역에 해당한다.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표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