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기 성남에서 60대 여성이 교제폭력 신고 한 달 만에 전 연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피습 직후 스마트워치로 신고했고, 경찰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지난해 5월 화성에선 30대 남성이 분리조치 상태였던 여성을 납치·살해했고, 그해 7월엔 의정부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50대 여성이 살해당했다. 올해 3월 남양주에선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스토킹 끝에 살해했다.
이처럼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과 경찰의 스마트워치 지급 등 보호조치에도 교제폭력·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해자 보호 체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로는 응급조치,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가 있다.
응급조치는 진행 중인 스토킹 행위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즉시 현장에 나가 제지하는 조치다. 이 스토킹 행위가 지속·반복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긴급한 경우 경찰이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연락 금지)를 직권으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한 게 긴급응급조치다.
잠정조치는 스토킹 범죄 재발 우려가 있을 때 경찰 신청이나 검사 직권으로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조치다. 잠정조치에는 ▲서면 경고(1호) ▲100m 이내 접근 금지(2호)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3호)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3호의 2) ▲경찰서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4호)가 있다.
경찰은 지난 3월 남양주 사건 이후 강화 도입한 '관계성 범죄 사건관리 종합계획 개선안'에 따라 스토킹·교제폭력 가해자(피의자)의 위험성을 고·중·저 3단계로 나눠 대응하고 있다.
가해자가 결별했거나 결별을 요구받은 경우, 관계성 범죄 신고 이력 5회 이상, 전자장치 부착, 고위험 흉기 사용, 목조름·자해 시도, 살해 협박 등 9개 항목 중 3개 이상에 해당하면 고위험군, 그 이하는 중·저위험으로 분류한다.
고위험 가해자로 분류되면 경찰이 7일 안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전자장치 부착(잠정조치 3호의 2)과 구치소·유치장 유치(4호)를 동시에 집행할 수 있다. 중·저위험 가해자에게는 불구속 수사 및 접근금지(2호) 처분이 내려진다.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의 경우 위험도에 따라 A등급(고위험)과 B등급(저위험) 2단계로 분류된다. 최근 3년간 신고 접수 2회 이상 또는 1년간 신고 접수 3회 이상이나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 결정 사건 피해자의 경우 A등급, 최근 3년간 1회 이상 신고 또는 1년간 2회 이상 신고한 피해자는 B등급이다.
고위험 피해자는 경찰이, 저위험 피해자는 민간 상담소가 모니터링한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험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성남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최고 위험등급인 A등급으로 관리되고 있었지만 가해자는 중위험으로 분류돼 서면 경고와 접근금지 등 1~3호 잠정조치만 내려졌다.
성남 사건과 같은 등급의 가해자에게 경찰이 다른 결정을 내린 사례도 있다. 지난 5월 경기북부지역 경찰은 중위험으로 분류된 20대 남성에 대해 전자장치 부착(3호의 2)과 구치소 유치(4호)를 함께 신청했다.
수사관 재량에 따라 같은 등급인데도 다른 조치가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한 일선 경찰관은 "관련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잠정조치 3호의 2나 4호는 수사관이 (위험도가) 중하다고 판단하면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구치소·유치장 유치 등 비교적 강도가 높은 잠정조치는 경찰이 신청하더라도 검찰·법원에서 기각되는 경우도 많다. 여러 조치를 동시에 적용하는 복합 잠정조치도 법원 인용률이 50%를 밑돌 정도로 인용 문턱이 높은 실정이다.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꾸준히 제기된다. 스마트워치는 피해자가 위험을 인지하거나 이미 습격당한 직후에 누르는 사후 알림 장치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남양주 사건을 통해 가해자가 별도 전과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경우 전자장치를 관리하는 법무부는 가해자가 스토킹 범죄로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받은 사실을 모르고, 스토킹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한 경찰은 가해자 동선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관 간 '칸막이 행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정부와 검·경 등 수사기관이 합동으로 꾸린 스토킹·교제폭력 대응 관계부처 TF는 지난달 13일 '스토킹·교제폭력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전자감독 대상자에게 잠정·임시조치가 내려지면 법무부 보호관찰소로 피해자 정보를 자동 공유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경우 경찰과 보호관찰관이 동시에 출동하는 공동 보호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6월부턴 전자장치를 부착한 가해자가 접근하면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실제 위치와 동선을 알려주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접근금지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 제도를 도입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도 내년 4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해자 처벌 없이 피해자에게 정보와 권한만 늘리는 조치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반복되는 참극을 막기 위해선 스토킹 대응 패러다임 자체를 '피해자 방어' 중심에서 '가해자 통제'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스토킹 등 대인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공간에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며 "이를 막으려면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물리적 접근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스마트워치는 선별적으로 지급되는 데다, 위급한 상황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가해자 통제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검경과 법원 등 사법기관이 관계성 범죄 심각성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봤다. 강력범죄처럼 눈에 보이는 피해로 이어지기 전까진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심리적·감정적 피해는 상당하다. 이걸 사법기관이 인식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