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됐다 돌아왔더니 '간첩'으로 15년 옥살이…57년 만에 무죄

이재윤 기자
2026.08.14 10:26
1969년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일명 속초간첩단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썼던 납북귀환어부들의 유족들이 지난 1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재심 무죄 판결문과 꽃다발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뒤 오히려 간첩으로 몰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2명이 57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국가기관의 불법 구금과 인권침해 속에 간첩으로 몰렸던 이들이 재심을 통해 뒤늦게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14일 뉴스1·뉴시스 등에 따르면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2부(부장판사 이배근)는 전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받았던 고(故) 이동근씨와 김호섭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1969년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 이른바 '속초간첩단 사건'의 주동자급으로 지목돼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북한으로 넘어간 것은 간첩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속초에 거주하던 월남 피난민 출신인 두 사람은 1964년 흥덕호를 타고 동해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같은 해 12월 귀환했다.

하지만 육군보안사령부는 1969년 2월 두 사람을 포함한 16명이 연루된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납북됐다 돌아온 어부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 당시 보안당국의 판단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당시 수사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국가기관의 불법체포와 불법감금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이를 토대로 2023년 6월 부친들이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처벌받았다며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수사기관이 불법 구금과 고문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었다.

법원은 올해 5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등을 토대로 이씨와 김씨에 대한 불법체포와 불법감금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도 지난 7월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씨와 김씨가 위법하게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받았고, 이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 역시 위법하게 수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진술도 위법한 구금과 수사 과정에서 나온 만큼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57년 만에 간첩이라는 오명을 벗게 되자 유족들은 뒤늦게나마 억울함이 풀렸다며 무죄 판결을 반기면서도, 지난 세월 겪은 고통은 되돌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씨의 아들 이정원씨는 "우리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일했던 사람인데 간첩으로 몰렸다"며 "58년 동안 우리 집안은 완전히 무너졌다. 형제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다"며 "오늘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잃어버린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억울함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했다.

김씨의 아들 김자문씨도 "무죄가 선고됐지만 우리 가족의 영혼은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며 오랜 세월 이어진 피해가 판결만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심경을 밝혔다.

유족 측 서창효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무죄 판결은 끝이 아니라 피고인과 유족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판결이 확정되면 형사보상과 국가배상 청구 등 후속 절차에 나설 예정이다.

당시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16명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5명이 추가로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유족들은 아직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 절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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