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야구는 역대급 호황이다. 2025년 사상 최초로 천만 관중을 돌파했고, 2026년에는 1200만 관중 시대까지 열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숫자다. 이제 '프로야구 르네상스'라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면서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하나의 사회·문화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5월 9~10일 양일간 창원NC파크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데이'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번 행사는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인 굿네이버스와 NC 다이노스가 함께 진행한 사회공헌 이벤트다. NC 선수들은 굿네이버스 로고가 새겨진 특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고, 첫날인 9일에는 최근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배우 정일우 씨가 시구를 했다. 또 이틀 동안 경남 지역 초등학생과 희망편지쓰기대회 참여 아동 60명이 그라운드에 초청됐으며, 선수 사인회와 나눔 체험 부스, 이닝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여기에 굿네이버스와 NC 다이노스는 사회공헌 파트너십 협약식까지 진행하며 단순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인 협력 의지도 밝혔다.
이번 행사를 보며 2007년 SK 와이번스 시절 진행했던 '사랑의 유니폼' 이벤트가 떠올랐다.
당시 SK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스포테인먼트'를 적극 추진하며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기획한 것이 바로 '사랑의 유니폼'이었다. 이 이벤트의 모티브는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FC 바르셀로나의 '유니세프 유니폼'이었다.
바르셀로나는 2006년 유니폼 전면에 UN 아동기금인 유니세프 로고를 새겨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일반적인 스폰서 계약과는 정반대였다. 기업으로부터 광고비를 받는 대신, 바르셀로나가 유니세프에 매년 150만 유로(당시 약 23억 원)를 기부했다. '클럽 그 이상의 존재(Mes que un club)'라는 바르셀로나 구단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당시 필자는 이 사례를 보며 '프로스포츠 구단도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사랑의 유니폼'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해 SK 선수들은 토요일 홈경기마다 '사랑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유니폼 뒷면 선수 이름 자리에는 개인 이름 대신 모두 '팬사랑'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사회에 돌려드리겠다는 의미였다. 유니폼 앞면에는 연고지인 인천을 새겼다. 또 이 유니폼을 입는 날에는 홈경기 입장 수입의 5%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고, 해당 기금은 연말 불우이웃돕기 등에 사용됐다.
지금 보면 익숙한 사회공헌 마케팅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프로야구에서 이런 형태의 캠페인은 상당히 낯선 시도였다. 내부적으로도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같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응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바로 경기 결과였다.
2007년 4월 21일 토요일 홈경기부터 선수들이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3경기 연속 패했다. 그러자 팬들 사이에서는 "팬사랑의 저주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 유니폼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스포츠 선수들은 일반인들과 비교해 징크스에 민감한 편이다. 사소한 변화도 경기 결과와 연결시키곤 한다. 게다가 당시 SK 감독은 '징크스'로 유명했던 김성근 감독이었다.
다행히 네 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번 NC의 굿네이버스 데이 역시 우연히도 NC가 특별 유니폼을 입은 두 경기 모두 패했다. 어쩌면 2007년 SK의 '팬사랑 유니폼'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프로야구의 사회공헌은 단순한 기부 행사가 아니다. 지역 사회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KBO리그는 10개 구단이 우승을 위해 경쟁을 벌인다. 우승이라는 파이는 정해져 있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우승을 하고 누군가는 꼴찌를 한다. 그러나 프로야구단은 우승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프로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기일수록 사회적 책임 역시 더 커진다.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그 사랑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NC와 굿네이버스의 협업은 단순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야구장이 단지 승패를 겨루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야구단 입장에서 유니폼 광고는 중요한 마케팅 수익원이다. 만약 NC가 이틀 동안 일반 기업 스폰서 유니폼을 착용했다면 적지 않은 광고 수익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NC는 단기적인 금전 수익 대신 사회공헌이라는 비금전적 가치를 선택했다. 당장의 숫자로는 계산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이런 가치와 철학이 구단 브랜드를 더 깊고 오래 남게 만든다.
결국 스포츠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을 연결하는 데 있다. 승패를 넘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때 스포츠는 비로소 더 큰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2007년 '팬사랑 유니폼'도, 2026년 '굿네이버스 데이'도 결국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것. 그것이 프로야구가 오래 사랑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