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아! 메르스, 손 놓은 연기금들

심재현 기자
2015.06.15 15:40

연기금·공제회 CIO 때아닌 휴가시즌

국내 연기금·공제회 CIO(최고투자책임자)들이 때아닌 휴가철을 맞았다. 예상치 못한 일정 취소가 잇따르면서다. 지난주 만난 한 연기금 CIO는 "찾아오기로 했던 해외 손님이 연락도 없이 미팅을 펑크냈다"고 했다. 허탈감과 당혹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연기금 CIO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시간을 초단위, 분단위로 쪼개 쓰는 자리다. 수십조, 수백조원의 투자를 결정하면서 하루에도 수십명을 만난다. 바쁜 때는 강연장 같은 곳에서 불특정 다수로 만나는 이들을 제하고 직접 만나는 사람만으로 하루 세자릿수를 채울 때도 있다.

시간이 곧 돈인 이들이 느닷없는 휴가를 맞게 된 것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1998년 외환위기 때나 글로벌 시장이 요동쳤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쉬지 않았던 투자세계의 지휘관들이 메르스라는 복병을 만나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홍콩·중국에 거점을 둔 인사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인접국이기도 하지만 중국 출장길에 올랐던 국내 기업인이 메르스 확진자로 격리 치료를 받은 사실이 보도되면서 한국 방문을 극도로 꺼리게 된 모양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홍콩 같은 경우 우리가 찾아가기로 했던 일정도 미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홍콩이 아시아권 투자시장에서 글로벌 투자정보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나온 쓸만한 글로벌 딜에서 한국이 아예 배제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투자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자할 곳을 몰라 투자를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국내 연기금·공제회가 운용하는 자금은 600조원이 넘는다. 모두 국민의 노후가 달린 돈이다. 글로벌 시장과의 괴리가 커질수록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미래의 노후자금 손실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저금리·저성장 장기화로 해외투자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메르스가 단순히 나만 안 걸리면 되고 말 일이 아닌 이유도 여기 있다. 메르스가 훗날 매달 받을 노후자금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메르스 극복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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