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시세)단말기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품을 팔아 투자한 기업을 관찰하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수탁자로서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다."
의안분석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가 지난달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 공청회에 참석해 적극적인 주주권 확대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주총회에서 경영진 편에 선 '거수기' 역할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행사한 의결권 내역을 살펴보면, 2014년 당시 국민연금은 735개 주총에 참석해 전체 안건 2775건 중 90.77%에 해당하는 2519건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비율은 9.05%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 비율은 2015년 10.12%, 2016년 10.07%, 2017년 12.87%로 소폭 올랐으나 대동소이하다.
이에 정부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국민연금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했다. 지난달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스튜어드십 도입 최종안에 주주권 행사 범위를 이사 선임과 해임 등을 포함한 '경영참여'까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경영참여 의결권 행사는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경우로 제한했고 관련 법과 규정 개정이 필요해 당장 실행되긴 어렵지만, 국민연금의 확실한 의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파급력은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본격 논의한 올해 의결권 반대비율(5월말 현재)이 예년보다 2배 수준인 20%로 상승하는 등 변화를 보였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몽규 HDC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을 계열사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데 반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은 총 772개 국내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5% 이상 지분율을 보유한 기업은 286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다른 연기금과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촉진해 자본시장에 주주행동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자금 운용을 맡긴 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키로 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130조1490억원 중 46% 수준인 60조4183억원을 위탁 운용하고 있다. 위탁 운용 규모가 워낙 커 자산운용업계의 동참으로 확산될 여지가 크다.
다만 영세한 자산운용사들이 비용 부담 등 현실적인 이유로 부담을 느끼는 곳이 적지 않다. 살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자산운용사는 전체 226개사 중 8%에 해당하는 18개사에 그쳤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을 위해선 주주총회 안건 분석과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해야 하므로 전문인력과 조직을 확보해야 한다"며 "비용 부담 때문에 도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위탁 운용사에 대해 인센티브와 적절한 보수를 지급해야 취지에 맞춰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