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세계 우주산업의 화두는 단연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현재 장외시장에서 약 1조31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으며, 다가오는 6월 기업공개(IPO)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1조5000억달러의 시가총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관심은 차세대 스페이스X로 몰린다.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는 기업은 로켓랩. 대학도 나오지 않은 고졸 엔지니어인 피터 벡이 설립한 곳이다. 벌써 기업가치가 50조원으로 올랐고 글로벌 위성발사 시장에서는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설립한 일론 머스크는 갖은 기행으로 유명하지만 로켓랩의 설립자인 피터 벡(Peter Beck) 역시 무척 특이한 이력을 지닌 에픽급 창업자 중 하나로 꼽힌다.
피터 벡은 1977년 뉴질랜드 인버카길(Invercargill)에서 태어났다. 인버카길은 거친 남극풍이 몰아치는 극한의 환경으로 지리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깡촌이다.
벡은 어린 시절 기계와 금속 작업에 빠져 있었는데 박물관장인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부친이 박물관에서 다양한 기계와 보석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호기심이 왕성한 성격으로 자랐다. 벡의 아버지는 손재주가 뛰어나 뉴질랜드 최남단 천문대의 거대한 망원경을 직접 깎아 만들 정도였다.
공해가 전혀 없는 인버카길의 캄캄하고 맑은 밤하늘 아래서 벡은 6살부터 아버지가 만든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천문학회 사람들의 심도 있는 토론을 들으며 그의 관심은 우주로, 특히 로켓 발사로 몰렸다.
벡은 10대가 되면서 중고 미니쿠퍼를 구입해 터보차저를 직접 개조하고 물 로켓을 만들어 발사하는 등 일반적인 학생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고교시절 진로조사에는 "로켓 제작자가 되고 싶다"고 적어냈다. 교사들은 벡 부모를 불러 "아드님이 현실과 점점 동떨어져 가고 있어 심하게 걱정된다"며 "뉴질랜드에서 로켓을 만든다는게 가능한 일이겠냐"고 진지하게 경고했다.
이후 벡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17세가 되던 해 피셔 앤 페이켈(Fisher & Paykel)이라는 뉴질랜드 가전 제조사의 공구제작 도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낮에는 세탁기와 냉장고 부품의 금형을 깎았고 밤에는 도서관에서 로켓 공학을 독학했다. 미국에서 중고 크루즈 미사일 엔진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를 분해해 부품을 연구하고 작업실에서 고체 연료 로켓 모터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공장의 정밀기계들을 이용해 자신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로켓 자전거였다. 자전거에 직접 깎고 조립한 로켓 엔진을 달아 시속 140km가 넘는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고, 이 모습이 뉴질랜드 저녁 6시 뉴스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는 훗날 "비공식이긴 하지만 로켓 자전거 지상 최고 속도 기록은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외에도 로켓 스쿠터, 로켓 롤러스케이트, 심지어 제트팩까지 차례로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피셔 앤 페이켈에서 습득한 금형 및 정밀기계 가공기술은 훗날 로켓랩의 토대가 됐고, 전통적인 우주항공 기업들과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리게 만든 핵심무기가 된다. 대학원 석박사 출신인 항공우주 공학자들은 로켓을 만들 때 극한의 성능과 이론에 집착하려는 고집이 있다. 남들이 따라하지 못할 수준의 정교하고 복잡한 수작업이 목표인 셈이다.
반면 벡은 가전제품 공장에서 팔려야 하는 대량 제품의 생산체계를 먼저 배우고 이론을 나중에 익혔다. "어떻게 하면 공장에서 냉장고 찍어내듯 로켓을 빠르고 싸게 양산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01년, 6년간의 혹독한 금형 공장 도제 생활을 마친 벡은 뉴질랜드 국책연구소인 산업연구소(IRL, Industrial Research Limited)로 자리를 옮긴다. 세탁기와 냉장고 부품을 깎던 손으로 이제는 첨단 스마트 소재와 초전도체를 만지기 시작했다. 괴짜 기술자가 이론을 겸비한 소재 공학자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훗날 로켓랩의 주력 발사체인 일렉트론(Electron)의 동체를 무겁고 비싼 금속 대신 가볍고 튼튼한 탄소섬유 복합재로 통째로 구워내는 획기적인 발상은 바로 이 연구소 시절의 경험에서 잉태됐다. IRL에서 종잣돈을 모은 벡은 2006년 마침내 평생의 꿈을 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보잉, 록히드마틴에 입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켓 자전거를 타던 사진과 직접 깎아 만든 로켓 모터 부품을 쑤셔 넣고 실리콘밸리와 휴스턴의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말단 엔지니어나 인턴십이라도 얻어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철저한 문전박대였다. 고졸 금형 기술자라는 꼬리표도 문제였지만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도 문제가 됐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과 직결되는 로켓 산업의 특성상 뉴질랜드 청년이 미국의 우주 발사체 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취업실패 보다 더 뼈아픈 것은 실망감이었다. 반도체 미세화와 스마트폰 혁명으로 손바닥만한 소형위성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덩치 크고 값비싼 대형 로켓에만 매달렸다. 벡의 눈에는 피자 한 판을 배달하기 위해 컨테이너 트럭을 모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가 생각했던 소형위성 전용발사 사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곳은 미국에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 태평양 상공에서 벡은 직접 로켓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비행기 좌석에 꽂혀 있던 냅킨을 꺼내 그 자리에서 새로운 로켓 회사의 로고를 스케치했다. 훗날 스페이스X의 턱밑을 위협하며 글로벌 우주 발사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로켓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