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이 9일 유가 쇼크로 인해 각각 서킷브레이커, 매도사이드카가 발동하면서 급락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가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자 외국인을 중심으로 대량 매도세가 터졌다. 증권가는 주가 단기 급락에 따라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손절매성 매물이 적체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단시일내 추세 반전이 어려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봤다.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96% 내린 5251.87에 마감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10시31분 52초에 코스피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고 밝혔다. 서킷브레이커는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될 경우 발동되는 제도다. 시장 전 종목의 거래가 20분간 중단된다. 이번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지난 4일 이후 3거래일 만이다. 발동 당시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52.80포인트(8.1%) 하락한 5132.07을 나타냈다. 장중 낙폭을 부분적으로 만회한 것은 개인이 4조6255억원 규모를 순매수하며 매물 일부를 소화한 결과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3조1805억원, 1조5332억원 규모로 순매도했다. 개인은 주가가 급락할 경우 단기 반등을 노리고 매수에 앞장서는 수급 주체로 평가돼 왔다.
삼성전자가 7.81% 내린 17만3500원에 마쳤다. 장중에는 16만7300원까지 내려 17만원선을 하회했다. SK하이닉스는 9.52% 떨어진 83만6000원에 마쳤다. △현대차(-8.32%) △삼성전자우(-5.08%) △LG에너지솔루션(-4.77%) △한화에어로스페이스(-3.17%)
△삼성바이오로직스(-3.95%) △SK스퀘어(-7.96%) △두산에너빌리티(-1.84%) 등 시총 상위권 대부분이 내렸다.
코스닥은 4.54% 내린 1102.28에 마감했다. 개인이 5186억원 순매수했고 기관도 479억원 순매수해 지수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외국인인 5441억원 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코스닥시장도 오전 10시31분 급락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닥150 선물 가격이 전일 대비 6% 이상 급락하고, 코스닥150 현물 지수가 3% 이상 하락한 뒤 1분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5분간 모든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이 정지되는 제도다. △에코프로(-3.65%) △알테오젠(-1.74%) △레인보우로보틱스(-11.18%) △에이비엘바이오(-0.32%) △리노공업(-6.93%) △코오롱티슈진(-8.32%)
주가 급락의 원인은 유가 폭등이 손꼽힌다.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 대비 20% 오르면서 배럴당 108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공습을 받은 이란이 보복 조치로 중동발 원유의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군사적으로 봉쇄한 여파다. 이는 해상보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선박 호위 및 보험 지원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선주 업계와 시장 참여자들의 회의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미 해군 5함대가 유조선 호위 등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란 측이 기뢰를 해협에 설치할 경우 미 해군이 기뢰를 제거하는 데 추가적인 시일이 소요되거나 돌발 변수가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은 에너지 수급에 있어 중동 지정학적 문제에 특히 취약한 국가로 손꼽힌다. 노무라증권의 중동발 에너지 수입 물량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수입 중 중동발(發)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54.2%로 추산된다. 대만과 중국의 경우는 각각 40%와 37.6%에 그쳤고 일본(50.3%) 역시 한국보다 낮았다. 노무라증권은 이란 분쟁이 아시아지역에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상황)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아시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란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는 한국은 물론 미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증권가에선 미국의 금리인하 기대 후퇴 등을 감안할 때 코스피지수가 최근 확인된 단기 저점보다 더 낮은 바닥을 한번 더 찾는 W자형(쌍바닥) 패턴을 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매물이 쏟아지는 상황이어서 시장이 저점을 최소 두번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3저 호황기나 닷컴 버블 당시의 급락 국면에서도 모두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 종료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지금처럼 증시가 급락했던 사례에서 V자 반등은 드물며, 대부분'W자 바닥"이라며 "불확실성이 확정되는 데까지 공포를 반영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