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1피트만 높아져도 아이들의 상상력은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천에 와보니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영원한 청년. 이런 애칭으로 불리는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으로 변신했다.
중앙정부 차관 자리에서 산하기관 원장으로 신분이 바뀐 그는 ‘창조경제’의 짐도 함께 내려놨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조금 자유로워진 건 사실이다. “‘생거진천’이란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라며, 최근 NIPA가 새로 둥지를 튼 충북 진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는 ‘살기 좋은 혁신도시’에서 ‘상상력을 혁신으로 연결하기 위한’ NIPA의 변신과 역할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차관 퇴임 후 미국에 머물며 ‘이매지노베이션’이라는 책을 썼다. 이매지노베이션은 상상(Imagine)과 혁신(innovation)을 합성한 신조어다. ‘후츠파로 일어서라’ ‘창업국가’(역서)에서 밝힌 그의 창조경제론은 금융 및 교육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구체화 됐다. 정부 노력도 한 단계 올라서야 하고, 혁신의 동력인 상상력 제고는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지난 2년간 누구보다도 창조경제 확산에 앞장섰다.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창조경제 개념이 안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어 먹고 살 거리를 고민한다. 근면·자조·협동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부지런한 손발을 앞세워 성공했다. 지금은 그 경쟁력이 사라졌다. 중국, 인도, 브라질에서 더 값싼 노동력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부지런함만을 강조하는 게 현실이다. 손발은 부지런해야 하지만 두뇌는 아니다. 우리의 두뇌를 창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잘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고, 지금도 창조라는 관점으로 압도하는 나라가 그곳이다.
21세기는 가치 있는 창의력이 성장의 원동력이다. 상상력이 창의력을 만날 때 즉 ‘이매지네이션’이 21세기를 지배할 수 있다. 근면·자주·협동을 상상·도전·혁신으로 바뀌어야 한다.
- ‘이매지노베이션’란 책을 냈다. 지난 2년간 설파했던 창조경제 정신과 뭐가 다른가.
▶이매지노베네이션은 상상력을 창의력으로 바꾸자는 의미의 신조어다. 에후드 전 이스라엘 수상이 KT에 방문했을 때 에스코트를 한 인연으로, 초청을 받아 이스라엘에 열흘간 다녀왔다. 두뇌가 있다면 아무리 자원이 없어도 먹고 살 길이 있다는 걸 느꼈다.
우리 국민과 이스라엘 국민의 차이를 총과 총알로 비교해보자. 총알이 발사되기 위해서는 총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필요조건이다. 총만 있다고 총알이 발사될까? 충분조건은 바로 폭발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총과 총알이 이스라엘인보다 못하지 않다. 그런데도 창의력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뻔뻔함과 당돌함을 뜻하는 ‘후츠파’에는 창의력을 높이는 10가지 요소들이 숨어있다. 바로 동기부여, 인내력, 감수성, 호기심, 창의력, 열린 사고, 낙관, 전문성, 겸손, 정직이 그것이다. 그는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덕목은 인내심 말고는 찾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형식을 강조한다”는 그는 “형식을 파괴하는 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창조적인 사회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 대기업이 지역을 맡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하나씩 만드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한다. 행사를 치르느라고 긴장하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 시도에 설립한 것은 긍정적이다. 혁신센터가 진정한 창조경제의 밑바탕이 되려면 강력한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바로 열린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혼자 힘으로 창조적으로 변신하기는 어렵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가지고 와라. 우리가 후한 값을 쳐주고 그것을 사겠다.” 이런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세계 20위권 기업들은 대부분 이렇게 열린 자세를 가지고 성장했다. 달나라에 좋은 회사 있다면 달나라까지 쫓아가서 그 회사를 흡수해야 한다.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도태된다.
그런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제록스다. 애플의 본사가 있는 팔로알토에 PARC라는 연구소를 세웠던 바로 그 제록스다. PARC는 연구원만 1만명에 세계 ICT 혁신의 보고였다. PC와 하드디스크, 마우스가 탄생한 곳이 바로 PARC다. 그런데 그런 성과들을 제록스는 연구소 안에 그냥 내팽개쳐뒀다. 그리고 다른 벤처기업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무시했습니다. 연구원들은 제록스를 뛰쳐나갔고 그들이 만든 회사가 3COM과 썬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ICT 기업들이다.
구글과 네이버는 똑같이 15년이 된 회사다. 구글은 이제 애플 다음으로 큰 회사로 성장했고, 네이버도 KT와 SK텔레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들이 가진 유형자산은 이전 거대 기업들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열린 혁신을 추구하며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창조경제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창조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정부는 기업과 지역의 연결은 성공했다. 이제는 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M&A에 대해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줘야 한다.M&A를 한다는 것은 기업에서도 큰 모험을 하는 것인데, 실패한 M&A에도 세금을 매기면 어느 기업이 과감하게 나설 수 있겠나. 혁신센터에 참여한 대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열린 사고를 하게 하도록 하는 게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이다.
무엇보다 금융권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벤처투자를 보면 융자는 널려 있는데 투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융자가 부력이 없는 물이라면 투자는 엄청난 부력을 가지고 있는 물이다.
수영장에 융자라는 물로 가득 차 있는데 거기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다. 이스라엘은 모든 물을 투자로 바꾸어놓고는 마음껏 뛰어들라고 한다.
벤처기업의 위험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위험을 헤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금융이 나와야 한다. 과거에는 담보가치를 잘 판단하는 금융가가 좋은 금융가였다면 지금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특허, 과학을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갖춘 금융가가 좋은 금융가다.
성공한 벤처 기업가가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은행이 융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 금융 외에도 교육이야말로 바뀌어야 창조경제가 되지 않나 싶다
▶맞다. 사람의 두뇌를 창조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 교육은 단순히 외우게 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칠판에 100개를 적어주고 외우라고 한다. 머리가 좋은 학생들은 그중에서 80개 외운다. 이스라엘을 예로 들면, 거기는 10개만 적어주고 나머지 90개는 알아서 채우라고 한다. 학생은 토론으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질문을 통해 다른 아이디어와 교환해서 채워간다. 하나가 두 개가 되는 기적이 생겨나는 것이다.
100개를 적어서 80개를 외우는 일과 자신이 만든 아이디어 하나로 나머지 80개를 찾는 것. 지식의 양은 같다고 하더라도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토론이 아이디어를 만드는 수단이라면 질문은 교환하는 수단이다.
기존 산업에 근무하는 CEO도 교육의 대상이다. 불행하게도 기존 산업의 CEO는 ICT의 필요성을 공부한 적이 없다. CEO를 대상으로 ICT가 접목되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GE는 과거에는 500만 달러를 받고 엔진 하나를 팔았다. 지금은 매달 20만 달러를 받고 관리를 해준다. 엔진에 센서를 부탁해서 엔진의 상태를 미리 파악해주고 필요한 검사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 항공사라도 GE의 엔진이 탑재된 비행기를 운항하면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렇게 변해야 한다. 한 대형 중공업 회사에 제품이 아닌 서비스를 판매해보라고 제안했더니 다른 부서에 있는 사람들이 반대를 한다고 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그래서 힘들다.
CEO가 이런 내용을 안다면 바꿀 수 있을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기존 산업의 CEO는 ICT의 필요성을 공부한 적이 없다. CEO를 대상으로 ICT가 접목되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 NIPA의 역할도 창조경제 흐름에 맞게 바꾸나
▶ICT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피지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 박수를 받았다. 초고속 인터넷을 빠르게 보급했고, 3세대(G)와 4G 서비스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그런데 사회는 피지컬한 사회에서 ‘로지컬한’ 사회로 바뀌었다. NIPA도 로지컬한 통찰력을 가지고 혁신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NIPA는 기존 산업에 ICT라는 처방을 내려주고 생기를 돌게 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프트파워를 강하게 해야 한다.
그는 고 3 학생이 자동차회사에 취업하고 싶다고 하면 기계공학과를 가라고 조언을 하는 선생님이 훌륭한 교사였던 시절을 빗댄다. 지금은? 그는 “빵점짜리 교사”라고 일축한다. 대신 “SW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라고 말한다. 자동차의 물리적인 모습을 만드는 일은 중국이나 로봇이 해야 할 일이다. 주인을 알아보는 자동차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의미다.
그는 군대도 예로 들었다. 155마일 휴전선을 매일 15만명의 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서 있다. 만약 스마트 CCTV와 드론으로 대체한다면? 인기척이 나면 CCTV가 신호를 보내고, 드론이 즉시 출동한다. 드론을 조작해서 카메라로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드웨어 중심으로 군대를 운영한다면 휴전선에 사람을 세울 수밖에 없다. SW식으로 군대를 바라보면 지금의 군대는 달라질 일이 태반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이브’ 운동. 비단 SW 교육만이 아닌 스포츠, 정치, 교육, 사회 모든 분야가 소프트해져야 한다는 게 그가 희망하는 ‘이매지노베이션’을 실현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