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부채를 탕감해주고, 잃은 토지를 반환해준다? 누군가 이런 제안을 한다면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것이고, 반시장 주의라는 지적이 빗발칠 것이다.
'이매진 주빌리'는 살기 힘든 이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수천년 전의 전통을 도입함으로써 숨통을 틔워 줄 필요가 있다는, 다소 무리하면서도 신선한 주장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저돌적으로 내달려온 우리 사회에게 필요한 건, 멈추어 쉬고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다시 살펴보는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희년(禧年, jubilee)'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통찰과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희년'이 뭘까. 희년은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으로 당시에는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를 안식일로 쉬듯,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지켜 땅을 쉬게 했는데 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해, 즉 7년이 일곱 번 지난 뒤 맞게 되는 50년째 해를 희년이라고 불렀다.
희년에는 대대적으로 부채 탕감, 노예 해방, 토지 반환이 이루어졌다. 부채 탕감과 노예 해방은 친족들의 도움을 받도록 했고, 토지는 원래의 분배 원칙대로 돌아가도록 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토지의 공공성을 유지하여 사회질서를 지키려는 조치였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바벨론, 아시리아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고, 비록 종교적 의례로 지켜졌다고 볼 수 있으나 가톨릭에서도 중세 이후 지금까지 희년이 지켜져 오고 있다. 지은이는 "이 희년의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확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외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수저 계급론'이 팽배한 지금의 현실을 볼 때, 절망적인 사회를 '재부팅'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부유한 서구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의미에서 1990년대 초반 출범시킨 '주빌리(Jubilee) 2000 프로젝트' 등에서 희년의 실마리를 찾는다.
국내에서도 지난 8월 주빌리 은행이 출범해 채권을 소각, 지난 10일까지 총 3789명을 악성 채무의 덫에서 구제한 것처럼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년'의 개념을 도입해 새 삶을 찾아줄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 이매진 주빌리=양희송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192쪽/1만1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