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국이 한풀이 무대가 됐다. 이세돌 9단이 끝없이 두드린 ‘1승의 문’이 13일 활짝 열렸다. 서로 팽팽하게 공격·방어하다 보니 누가 더 우세한지를 해설자, 관중, 이 9단마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 9단의 승리에 환호성을 터뜨린 해설자는 “알파고의 표정을 볼 수 있다면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 9단은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상대로 180수 만에 값진 1승을 거뒀다.
◇알파고 연이은 실책=이날 승부는 중반 전투부터 이 9단에게 유리하게 흘렀다. 이 9단은 두 귀를 점령한 뒤 좌변·우변에도 집을 마련하는 등 실리 중심의 전술을 펼쳤다. 알파고는 상변에서 중앙까지 거대한 집을 만들었다. 이 9단은 중앙 삭감을 하면서 알파고 집 내에서 수를 내려고 했다. 이 순간 알파고는 우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 즉 실책을 남발하며 불리한 경기를 이끌었다. 알파고는 중앙의 약점을 보강하지 않고, 좌하귀에 뜻밖의 끼우는 수를 두는 등 혼란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이 9단은 좌변 알파고의 대마를 압박해 선수를 잡은 뒤 상중앙에 잡혔던 백돌을 연결, 확실한 승기를 잡았고 알파고는 착점 시간이 늦어지는 등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 9단은 끝까지 침착하게 대국을 운영, 대망의 첫 승을 거뒀다.
◇“알파고 실력 모르겠다”=3000만 건이 넘는 기보를 스스로 학습하고, 형세를 판단하는 직관력,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안전성을 갖춘 알파고가 첫 패전하면서 IT 전문가들은 “이번 이 9단의 역전승으로 알파고의 실력을 가늠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대국 막바지 경우의 수가 줄어 알파고의 연산 능력이 빠르게 가동되는 여러 알고리즘이 이번 대국선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 9단이 혼신의 연구 끝에 내놓은 승부수가 알파고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김현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식마이닝연구실장은 ”이 9단이 3차례 대국을 통해 알파고의 알고리즘 패턴을 읽기 시작했고, 대응력도 키웠다고 볼 수 있다“며 100% 승률을 지닌 AI는 아직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 9단은 이미 승패가 결정돼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인 데다 그동안 학습을 통해 게임을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해 자신에게 유리한 대국을 펼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대국 11수 초반 알파고가 2국과 비슷한 ‘흉내바둑’을 두자 ”이기는 전략에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9단은 이날 경기 후 간담회에서 ”한 판을 이기고 이렇게 축하 받기는 처음“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이번 경기를 하기 전 5대 0, 4대 1 이런 얘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나는 데 만일 제가 지금 3대 1로 이기고 있다면 한 판을 졌던 게 아프지 않았을까...3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많은 분들의 응원이 있었던 덕에 한 판이라도 이길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비록 승자는 이미 3국서 가려졌지만 이 9단은 오는 15일 알파고와 제5국을 마저 치른다. 이 9단은 ”나머지 대국까지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한편,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오늘 천재 이세돌을 응원하겠다“고 밝히며 이 9단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