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성과 감성을 가진 인류의 대표 이세돌 9단과 당대 최고의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가 겨루는 세기의 대결.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던 그때를 생각하면 정작 3월 9일 막을 올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 1~4차전은 그야말로 '어어'하는 사이에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이 9단이 3연패로 챌린지매치의 우승을 알파고에 내준 뒤 4차전에 이르러서야 첫 승을 기록한 것은 아쉽지만, 그것이 불과 세 판의 경험으로 알파고의 이상 감각과 소리 없는 압박에 적응해 끌어낸 승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다.
15일, 마지막 대국 5차전의 관전 포인트는 알파고의 역량을 제대로 알고 이 9단이 어떻게 싸울 것인지 예측해보는 재미에 있다.
그냥 중계되는 대로 지켜볼 것이 아니라 '초반 포석부터 중반 전투, 종반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나누어 그 전략과 전술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프로들의 해설을 따라가면 훨씬 흥미진진한 관전이 되지 않을까.
그 옛날 병법의 달인 손무(孫武)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했다. 인류의 대표 이세돌 9단은 속된 표현으로 '털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잘 알려져 있으니 알파고에 대해서만 알아보면 되겠다.
알파고는 1천202대의 CPU(중앙처리장치)와 176대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탑재한 컴퓨팅 시스템. 일반 컴퓨터를 연결했다. 초당 80개조의 연산속도는 1997년 세계 체스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슈퍼컴퓨터 ‘딥블루’와 비교가 우스울 만큼 빠르다(‘딥블루’는 이제 스마트폰 안에서도 작동한다). 20년 동안 발전해온 반도체 개발속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딥마인드는 알파고에 KGS(세계의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바둑사이트) 서버에 등록된 강자들의 바둑 16만 판과 3000만 개의 바둑모형을 입력한 다음 ‘몬테카를로 방식'(Monte Carlo method- 폴란드계 미국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마르친 울람이 고안한 모의실험)에 두 가지 신경망(neural networks)을 결합한 자율강화학습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이미 5개월 전에 유럽챔피언 판후이를 5-0으로 일축했다.
알파고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여기서 하나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최정상급 프로에게 두 점 치수라는 판후이를 꺾었을 때 알파고에 구축된 데이터는 KGS 서버의 아마추어 기보밖에 없었다는 것(KGS에 간혹 익명의 프로가 드나들긴 해도 무의미한 숫자다). 다시 말해서 최선이 아닌 수준의 학습 결과로 판후이를 이겼다는 얘기다. 더 우수한 프로의 바둑이 지천인데 왜 굳이 아마추어 기보만 입력했을까.
당연히 이유가 있다. 딥마인드는 아마추어의 바둑데이터로만 학습한 알고리즘으로 프로보다 아마추어 정상에 가까운 판후이를 이길 수 있는지 테스트한 것이다. 만일,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프로들의 기보데이터를 구축하고 같은 강화학습을 거쳐 정상급의 프로도 이길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한다.
실제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는 그런 절차를 거쳐 성사됐다. 딥마인드는 판후이와 대국 이전에, 다양한 바둑소프트웨어와 대국해 꾸준히 알파고의 역량을 검증했다.
지금까지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바둑소프트웨어 ‘크레이지스톤'(Crazystone)과 ‘젠'(Zen)을 포함해 오픈소스 바둑프로그램 ‘파치'(Pachi)와 ‘푸에고'(Fuego) 등이 알파고의 스파링 파트너였다. 실적은 총 495전 494승 1패.(사실상 초기의 1패는 의미가 없다.) 바둑 알고리즘끼리의 대결에서 완벽한 승자가 됐다는 말은 지금까지 드러난 기계적 결함을 최소화했다는 말과 같다.
이런 절차와 결과야말로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를 알리며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고 말한 자신감의 배경이다. 그때 수많은 아시아의 바둑전문가들은 ‘어딜 기계가 감히 인간에게!’라는 막연한 우월감으로 승리를 자신했었고 그 결과는 현재와 같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의 강심장과 이번 대국에 임하는 자세야 말로 최고 관전포인트다. 흔들리지 않는 알파고를 이세돌 9단이 어떻게 흔들 것인가, 또 다시 결정적 수로 알파고의 '버그'를 유도할 것인지도 주목거리다.
챌린지매치 5차전의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즐기는 자세’다. 바둑은 누가 뭐라고 해도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놀이다. 그것도 무려 3000년을 이어 내려오면서도 원형을 잃지 않은 놀이. 과연, 바둑의 매력은 무엇일까. 5차전을 감상하면서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手談]’의 재미도 만끽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