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덕질' 못벗은日, 디지털청 만들고도 '먹통사고' 연발

차현아 기자
2022.07.13 06:00

인싸IT

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이동통신사인 KDDI의 다카하시 마코토 사장이 기자회견을 가지고 발언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새벽 발생한 KDDI의 대규모 통신장애에 대해 사과했다./도쿄=AP,뉴시스

지난 2일 일본 3대 통신사업자 중 하나인 KDDI에서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 86시간 만에 복구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장애로 피해를 입은 통신회선 수는 최대 3915만 개로, 일본에서 발생한 통신사고 중 최대 규모다. 이용자 불편은 물론 물류와 의료 등 통신망 기반 사회 인프라 전반이 이틀 간 마비되면서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일본의 잇따른 통신 장애사고는 한때 글로벌 IT(정보기술)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매년 통신먹통 반복..."日에선 번호 두 개 개통 필수" 목소리도

12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KDDI 장애는 도쿄의 타마 네트워크 센터에서 모바일 코어망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 교체작업 중 발생했다. 교체한 라우터에 발생한 장애로 액세스(접속 시도)가 모두 신규 라우터로 집중됐는데, 이후에도 쏟아지는 액세스를 차단하지 못해 전국 단위 통신 네트워크 전체가 먹통이 된 것이다. 트래픽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순차 복구했지만, 고객 접속정보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가입정보가 연동되지 않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복구가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일본에서 매년 이같은 역대급 먹통사고가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KDDI 장애 복구가 완료된 지 이틀 후인 지난 7일, NTT도코모에서도 5G 장애가 발생했다. 오후 6시15분 부터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장애로 훗카이도 중부 지방의 5G 가입자들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NTT도코모에선 지난해 10월에도 29시간 넘게 통신 서비스가 마비된 바 있다. 2018년 12월에는 또 다른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에서 장애가 발생해 약 3060만 개 회선이 차질을 빚었다. 일본 누리꾼 사이에서 "먹통은 상수", "미리 두 개 통신사 회선을 개통해놔야 한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이동통신사인 KDDI의 다카하시 마코토 사장(오른쪽)이 기자회견을 가지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도쿄=AP,뉴시스
이틀 넘게 역대급 장애 이유 ① 낡은 시스템 ② 아날로그 중시 풍토

일본의 빈번한 장애사고는 비단 통신 서비스만은 아니다. 일본 대형은행인 미즈호 은행에서는 지난해에만 8차례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 2020년에는 세계 3대 증시 중 한 곳인 도쿄증권거래소가 시스템 결함으로 하루 종일 거래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금융, 행정 등 일본 IT 인프라 대부분은 1990년대 구축됐는데 이후에도 개편보단 기존 것을 증축하거나 보수하면서 계속 사용한 결과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례로 일본 금융 시스템은 2000년대 이후 은행 합병 과정에서도 각 은행의 전산망을 연동만 해놓았다. 내부 전문가들조차 전체 시스템 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다. 일본 IT서비스 시장이 1990년 대부터 극소수 SI(시스템 통합)기업의 독과점 체재였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일 정도로 경쟁이 없다보니 낡은 자사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일본 오사카부 IT 행정 특별고문인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장애가 발생한 통신, 금융 기업은 대부분 낡은 특정 벤더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곳들"이라고 꼬집었다.

아날로그를 중시하는 문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디지털청을 만들어 일본 전체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한다지만 정작 관료들이 디지털 서비스에 큰 관심이 없고, 장애가 발생해도 별 다른 제재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엔 일본 사이버 보안담당 사쿠라다 요시타카 장관이 국회에서 "살면서 한 번도 컴퓨터를 써본 적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됐다. 일본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백신 접종을 받으려면 구청에서 종이 서류에 인증도장을 받아야 할 정도로 '도장 사랑'이 각별한 나라로도 유명하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는 "일본 IT인프라가 낙후한 데에는 정부의 인식도 한 몫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IT 인프라 수준이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한국 역시 통신 인프라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대응방안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통신장애 한 번에 사회에 미치는 혼란도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에서도 약 한 시간 동안 KT 통신장애가 발생, 일반 시민과 소상공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지평 교수는 "우리도 통신 장애로 인한 비상대응 체제가 잘 갖춰져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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