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글라스를 쓴 사람이 식당 메뉴판을 바라본다. 안경 속 AI는 외국어를 번역한 내용을 음성으로 들려준다. 길을 걸으면 건물과 간판을 인식해 목적지까지 안내하고 회의 중에는 참석자의 발언과 화이트보드 내용을 요약한다.
착용자에게는 편리한 AI비서다. 안경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다른 이야기다. 자신이 카메라에 담기는지, 목소리가 수집되는지, 영상이 저장되는지 알기 어렵다. AI글라스가 확산하면서 개인정보 보호의 중심이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에서 '기기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까지 넓어졌다.
AI글라스는 단순히 카메라를 안경에 붙인 제품이 아니다. 카메라와 마이크, 각종 센서가 사용자의 눈과 귀처럼 주변 환경을 읽고 AI가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번역이나 길안내처럼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 기능도 있지만 영상녹화와 실시간 공유, 대화요약처럼 주변 사람의 얼굴과 음성이 기록되는 기능도 있다.
기존 스마트폰과 달리 정보수집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기기를 꺼내 카메라 앱을 켜고 상대방을 향해야 한다. 촬영대상이 비교적 쉽게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 반면 AI글라스는 평범한 안경처럼 착용한 채 작동한다. 상대방은 사용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지, AI가 얼굴과 음성을 분석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촬영과 단순인식의 경계도 모호하다. AI가 메뉴판의 글자를 읽거나 건물을 인식하려면 카메라가 주변 장면을 입력받아야 한다. 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저장하지 않더라도 정보수집과 분석은 이뤄진다. 촬영 표시등만으로 충분한지, 음성·얼굴인식이나 클라우드 전송 때도 알림이 필요한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개인정보 보호당국이 강조하는 해법은 '개인정보 보호 중심 설계'다. 제품을 출시한 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단계부터 수집정보와 저장기간을 최소화하고 주변 사람이 작동 사실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전면 표시등이나 소리로 알리고 표시기능을 사용자가 임의로 끌 수 없게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얼굴·음성 등 민감한 정보는 기기 안에서 처리하고 외부 서버전송을 줄이는 방식도 거론된다. 사용자가 수집된 정보를 확인하고 삭제할 수 있는 기능과 일정시간이 지나면 자동폐기되는 구조도 필요하다.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휴대전화로 사람과 거리를 자유롭게 촬영하는데 AI글라스에만 강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있다. 촬영표시를 지나치게 눈에 띄게 만들면 제품의 디자인과 사용편의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반대로 표시등이 작거나 가려질 수 있다면 주변 사람을 보호하는 효과가 떨어진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기술이 가져오는 편익은 굉장히 크지만 사용자가 아닌 제3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며 "사용자도 다른 사람이 AI글라스를 사용할 때는 제3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AI글라스는 시작이다. 카메라와 센서를 단 로봇이 가정과 사업장에 들어오고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 사람과 차량을 상시 인식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AI가 현실을 직접 보고 듣기 시작하면서 개인정보 규제도 제품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미리 정하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이기혁 중앙대 융합보안학과 교수는 "스마트글라스 기술이 거의 컴퓨터 수준이니 컴퓨터에 들어가는 보안요소가 가미돼야 할 것"이라며 "현재 국내의 경우 IoT(사물인터넷) 보안기준이 있는데 스마트글라스는 아직 아무런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으로선 기업이 보안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