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는 환자들이 있다. 희귀병인 '저인산효소증'으로 다리가 짧고 'O'자 모양으로 크게 휘어졌기 때문인데, 뼈 무기질화를 담당하는 특정 효소가 부족하면서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다행히 빨리만 진단하면 병 진행 속도를 늦춰 일상생활을 큰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병원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이른바 '진단방랑'을 겪느라 치료 시기도 놓치고, 급여 기준이 까다로워 병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왔다.
17일 안상훈 국회의원이 주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희귀질환 조기진단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조성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저인산효소증 같은 희귀병은 조기 진단으로 적절히 치료하기만 해도 예후가 크게 좋아진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오랜 진단방랑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까지 잃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저인산효소증은 희귀한 골격계의 선천성 대사이상으로 '조직 비특이적 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TNSALP)라는 특정 효소의 생성을 담당하는 ALPL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켜 발생한다. 이런 유전자 변이로 TNSALP가 결핍되면 골모세포와 연골세포에서 뼈의 석화 작용에 지장을 초래해 골격계와 비골격계에 증상을 야기한다. 유치(5세 이전)나 영구치가 또래보다 일찍 빠지고, 뼈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키가 매우 작고 체중도 적다. 또 폐 형성 저하증을 유발해 호흡 기능 부전을 초래하는데, 실제 저인산효소증을 앓는 신생아·영아 환자가 사망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호흡부전'이다.
이 때문에 저인산효소증 환자가 1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은 58%, 5세 이전 사망률은 73%에 달한다. 2022년 국내 5세 미만 사망 인원(1532명) 가운데 저인산효소증으로 인한 사망자는 6명으로 추정된다. 강정민 연세대 치과대학병원 소아치과 교수는 "저인산효소증으로 유치가 일찍 빠지면 잇몸뼈(치조골)가 흡수돼 치아가 흔들리고 잇몸이 내려앉는다"며 "성장기인데도 음식 섭취가 어려워 성장·발육을 저해하고, 유치원생인데 틀니를 껴야 하는 상황까지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저인산효소증 치료법은 체내 결핍된 효소인 ALP를 피하에 직접 넣어주는 '효소 대체 요법' 주사제다. 이 치료법의 효과는 놀랍다. 5세 이하 영아 대상 연구에서 '효소 대체 요법'을 받은 영아의 1년 생존율은 95%, 5년 생존율은 82%로 이 요법을 받지 않은 대조군(각각 42%, 27%)보다 월등히 앞섰다.
국내에선 효소 대체 요법 주사제에 대해 2020년 6월부터 국가보험(급여)이 적용됐다. 하지만, 캐나다·영국·미국 등과 비교하면 급여기준이 매우 까다롭다는 게 조성윤 교수의 지적이다. 또 현재 급여기준은 '발병 및 치료 시작 연령이 만 18세 이하'로, 성인 이전에 증상이 발현되더라도 성인 이후에 진단받는다면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조 교수는 "지난해 2월 기준, 국내 저인산효소증 소아 환자 수는 44명으로 예상되지만, 숨은 환자를 발굴하지 못해 겨우 2명(인구 10만명당 0.4명)만 치료받고 있을 뿐"이라며 "우리보다 환자 수가 3배 많은 일본(144명)은 10만명당 11.7명이 치료받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독일은 국가 차원의 스크리닝을 통해 저인산효소증 환자 16명을 찾아냈다. 일본은 영유가 구강검진에서 의심 환자를 찾아, 현재 소아 환자 110명이 치료받고 있다. 오스트리아·스웨덴은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의료기록 분석작업으로 의심 환자를 식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조기 진단 시스템 자체가 없어 저인산효소증인 줄 몰랐다가 의문사하는 경우도 적잖을 것이란 게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치료받는 저인산효소증 환자 2명 중 한 명은 8개월간 '진단방랑'을 겪다가 진단이 늦어졌고, 치료까지 늦어지면서 호흡기를 떼기까지 4.5년이나 걸렸다. 반면 다른 1명은 이 질환에 대해 치료 경험이 있는 조성윤 교수를 찾아오면서 진단·치료가 빨랐고, 호흡기를 떼기까지 걸린 기간은 2개월에 불과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 김지영 과장은 "의사가 환자, 특히 신생아·영유아 환자를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질병관리청이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학회와 협업해 (의사 대상) 각 분야 희귀질환 교육 등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질병청은 조기 진단, 적기 치료를 위해 어떤 희귀병으로 진단돼 어떤 검사·치료를 받는지, 몇 개 의료기관을 통해 최종 진단되는지 통계 데이터를 공고히 집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지민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 사무관은 "영유아 구강검진 문진표에 '자녀의 유치 중 5세 이전에 빠진 치아가 있습니까?'와 같은 문항 하나를 추가하는 건 행정적으로 어렵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전문가그룹인 치과 전문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에게 자문했을 때 '유치가 빠지는 원인이 너무도 다양해, 치아가 소실됐다고 해서 곧바로 저인산효소증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검사하도록 안내하는 게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게 주류 의견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일본의 사례도 있으니 영유아 구강검진 문진표 항목 추가 건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