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달러 환율 불안의 '범인'은 계속 바뀌었다. 어느 날은 국민연금이었고 어느 날은 서학개미였다. 올해 들어선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이 지목됐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원화가 맥을 못 출 때마다 외환당국은 새로운 설명을 찾아냈다.
범인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진짜 원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화를 들고 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 당국이 범인 색출에 열을 올리는 동안 시장은 한미 금리 격차를 장기간 방치한 통화정책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투자자는 수익률과 위험을 보고 움직인다. 미국 금리가 높고 한국 금리가 낮다면 달러 자산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도체 수출이 아무리 좋아도 국내외 자금이 동시에 달러를 찾으면 원화는 강해지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확대 및 외환스왑 확대, 구두개입, 외환시장 24시간 개방 중 어느 것도 원화 약세의 흐름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더욱이 서학개미를 국내 증시로 되돌리겠다며 도입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핑계는 충분하다. 외환당국이 그동안 내놨던 처방들은 보조수단일 뿐이다. 원화 가치의 기초를 세우는 것은 결국 통화정책이다.
다음 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금리 인상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금리 인상의 가장 강한 명분은 물가였지만, 지금은 물가 뿐만 아니라 환율도 고려해야할 요인이다.
원화 약세가 길어지면 수입물가 부담이 커지고 소비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통화정책이 환율을 외면하면 결국 물가 안정 목표도 흔들린다. 원화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면 반도체 호황도 환율 불안과 자산시장 과열에 잠식될 수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성장률과 세수 전망이 개선된 지금이 오히려 금리 정상화의 기회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당분간 유지해 시장에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향후 통화정책방향과 관련해 "주택가격, 가계부채, 환율 등 모든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은 그 말 그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할 때다. 환율도, 물가도, 금융안정도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