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12세 남아에도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접종 백신 무료 접종을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12세 이상 남성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하는 안을 검토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보건과경제고위급회의(HLMHE) 의장국으로 처음 회의를 주재했는데 이에 걸맞게 자궁경부암 근절을 위해 우리나라의 HPV 백신 접종 국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HPV는 자궁경부암, 구인두암, 항문암, 질암, 생식기 사마귀, 불임 등을 유발한다. 자궁경부암의 90%와 항문생식기암·구인두암의 70%가 HPV 감염으로 발생한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과 구인두암을 90% 이상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APEC 부대행사로 열린 '자궁경부암 근절 로드맵(이행안) 발표 행사'에서 "자궁경부암 근절 로드맵(2026~2030년)을 주제로 뜻깊은 자리를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이미 12세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HPV 무료 예방접종을 시행해 매년 약 80% 이상의 접종률을 달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12세 이상 남성 청소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내년부터 HPV 예방접종 대상을 만 12세 남성 청소년까지 확대하는 예산을 반영했다. 현재는 만 12~17세 여성 청소년과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만 지원 대상인데 앞으로는 남성으로 대상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2016년 여아 한정으로 시작된 HPV 예방접종이 도입이 10년 만에 남아까지 확대됐다.
정 장관은 "자궁경부암은 예방 가능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WHO(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90-70-90 목표'는 2030년까지 여성의 90% HPV 백신 접종, 70% 조기 검진, 환자의 90% 치료 접근 보장을 달성하자는 국제사회의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러한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자궁경부암 국가 암 검진 사업으로 2016년부터 20세 이상 여성에게 2년마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기 발견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여성에게는 병원에서 진료시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5%를 적용해 치료비 부담을 줄이고,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을 통해 치료 후 건강관리를 지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여성들을 위해서도 이번에 (2021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갱신되는 APEC 자궁경부암 근절 로드맵을 통해 모든 여성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발표된 APEC 자궁경부암 근절 로드맵은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보건실무그룹회의에서 합의한 것이다. 로드맵은 2030년까지 만 15세 이하 소녀의 90% HPV 백신 접종, 35~45세 여성의 70% 고성능 검사, 자궁경부암 진단 여성의 90% 치료를 목표로 한다. 로드맵에서 한국은 내년 남아 HPV 백신 국가 접종 지원 계획 발표에 따라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성중립 접종' 시행 국가 사례에 담기기도 했다. 그간 HPV 접종에서 남성이 차별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울러 APEC은 로드맵에서 여아가 15세까지 백신 접종을 받도록 보장하고, 필요하고 비용 효과 분석을 통해 뒷받침되는 경우 국내 예방 접종 일정의 일부로 남아도 15세까지 백신 접종을 받도록 했다. 또 정기 접종 일정을 놓친 성인을 위한 추가 접종 전략도 홍보해 면역 격차를 해소하도록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부가 남아까지 HPV 백신 무료 접종 지원 대상을 확대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원 백신 종류를 현행 4가가 아닌 9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9가 HPV 백신은 9가지 바이러스를, 4가 HPV 백신은 4가지 바이러스만 각각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9가 HPV 백신은 HPV 관련 암을 최대 96.7%까지 예방해 4가 HPV 백신 대비 20% 이상의 추가 예방효과가 있다. 또 국내에서 호발하는 HPV 52형과 58형은 현행 4가 백신으로는 예방이 불가능하다. 이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에서도 한국을 제외한 29개국이 9가 HPV 백신을 남녀 모두에게 지원하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4가 HPV 백신을 9가 HPV 백신 지원으로 드는 데 추가로 드는 예산이 30억~40억원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다"며 "이제 국가 차원에서 9가 백신 접종을 지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