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열흘간 쉴 수 있는 이번 추석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의사들이 "연휴 기간 경증환자들은 응급실에 오지 말아달라"며 당부했다.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경증환자가 연 1200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들은 "이미 의정갈등으로 번아웃이 왔는데, 연휴까지 길면서 명절의 악몽이 재현될까 걱정"이라며 한숨짓는다.
2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025 추석명절 응급의료체계 과밀화, 붕괴예방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응급실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언제나 악몽이었다"며 "의정갈등 초기 국민들이 보여줬던 시민 의식과 경각심마저 거의 없어진 상태에서 맞이할 이번 명절은 큰 혼란과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매년 명절만 되면 병원 응급실은 '일시적 재난상황'이 초래된다. 배후진료(응급실 1차 진료 이후 담당 진료과의 2차 진료) 의료진이 평소보다 줄어들거나 공백인 상황인 데다, 1차 의료기관 상당수가 연휴 기간 문을 닫으면서 경증환자가 응급실에 몰려와서다.
설상가상 응급실을 지키는 전공의는 의정갈등 이전보다 크게 줄어든 상황.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응급의학과는 전공의 656명 모집에 276명(42.1%)만 충원됐다. 여기에 지방에서 일해온 응급의학과 전문의 상당수가 서울·수도권 대형병원의 사직 교수 자리로 이동하면서 지방 응급의료 체계는 흔들리고 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료체계는 (의정갈등 시작 전인) 2년 전보다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나빠졌다"며 "최종 치료를 위한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이 쉽지 않기에 '응급실 뺑뺑이'가 속출할 것이고,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은 사망할 것"이라며 "결국 이번에도 명절의 응급의료대책은 국민의 양보와 인내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행(行)'은 코로나19가 범유행한 2021년보다 크게 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2024년 1189만명에 달했다. 코로나19 방역이 엄격했던 2021년(1029만명)에서 불과 3년 만에 160만명(15.5%)이나 증가한 것이다.
올해는 1~7월 경증환자 694만명이 상급종합병원을 찾았는데, 이대로라면 올 연말까지 누적 119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이들 경증환자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은 질환은 본태성 고혈압, 급성 기관지염(감기), 등 통증 순으로 많았다.
장종태 의원은 "매년 1200만 명에 가까운 환자가 감기, 고혈압, 허리 통증 같은 경증질환으로 대학병원을 찾는다는 건 명백한 의료 자원의 낭비"라며 "중증·응급 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들이 합리적인 의료 이용을 할 수 있도록 동네 의원 중심의 1차 의료를 강화하고, 대형병원의 경증 진료에 대한 수가 감액 등 대형병원 이용을 줄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국민을 향해 "응급실은 24시간 열려 있지만, 모든 의료를 제공할 수는 없다. 응급실에서 제공하는 것은 응급치료이며, 최종 치료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증상이 아닌 단순 발열, 복통, 설사, 열상, 염좌, 가벼운 사고 등의 증상에는 상급병원의 응급실이 아닌 지역의 1차 의료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며 호소했다.
이어 정부를 향해서는 "명절 응급실 환자 과밀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경증환자들이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탁상행정으로 말뿐인 대책을 남발하지 말고 장기 응급의료계획에 명절 연휴 의료수요 증가 상황에 대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증 환자를 위해 문 여는 병·의원과 약국의 운영 시간 등 정보는 응급의료포털(E-Gen)과 119 콜센터 등에서 안내하고 감기, 복통, 두드러기 등 주요 경증 질환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안내 자료 배포한다. 응급실을 가야 하는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땐 스마트폰에서 '응급 똑똑' 앱을 다운받아 증상에 맞는 적정 의료기관을 안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