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이 문을 닫는 늦은 밤(오후 11시까지), 휴일(오후 6시까지)에 아픈 아이가 진료받을 수 있게 정부가 운영하는 제도가 '달빛어린이병원'이다. 이달 기준, 전국 130개소가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받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소아청소년병원 89%가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받아도 수가를 충분히 보전받지 못하거나 못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20곳 소아청소년병원 단체인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소아의료체계 정책 관련 회원병원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회원병원 52곳(달빛어린이병원 지정 27곳, 미지정 25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스탠바이 코스트(Standby cost, 상시 대기비용)를 충분히 보전받는지'에 대한 문항에서 '전혀 아니다'가 56%(29곳), '아니다'가 33%(17곳)로 89%가 개선을 원했다.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받지 않은 회원병원 25곳 가운데 17곳(68%)은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받지 않았지만 사실상 달빛어린이병원의 기능(야간 진료, 검사, 수액치료, 입원·응급대응 등)을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달빛어린이병원 기준이 아니더라도 고난도 검사·입원·응급 대응할 수 있는 소아청소년병원은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인정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는 '매우 그렇다'가 52%(27곳), '그렇다'가 29%(15곳)로 81%가 찬성했다.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는 '문을 오래 여는 병원'보다 '무엇을 해낼 수 있는 병원(진료역량)' 중심으로 전환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 42%(22곳), 그렇다 35%(18곳)로 매우 높았다.
응답 회원병원(52곳) 중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곳(27곳)을 대상으로 '달빛어린이병원의 운영시간 중심 평가체계가 실제로 고난도 진료(검사·입원·응급 대응)를 불리하게 만들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가 29%(15곳), '매우 그렇다'가 19%(10곳)로 나타났다. 반면 '아니다'가 17%(9곳), '전혀 아니다'가 12%(6곳)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야간 진료와 검사·입원이 모두 가능한 소아청소년병원이 운영시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달빛 지원을 받지 못하는 건 제도적 역차별'이라고 답한 비율도 '매우 그렇다'가 46% (24곳), '그렇다'가 31%(16곳)로 77%를 차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 구축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1개 시·도에서 20개 협력체계가 지정·운영 중에 있으며, 내년 12월까지 진행된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일정 지역 내에 소아진료 협력체계를 구축해 중등증 이상의 소아 환자가 발생할 경우 협력체계 내 병·의원간 원활한 연계를 통해 적기 치료를 제공하고, 응급실 소아환자 쏠림을 완화하겠단 계획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이 시범사업이 '중등도 이상 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한다'고 답한 비율은 78%('매우 그렇다' 20곳, '그렇다' 21곳)에 달해, 소아청소년병원들이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병원에서 '진료 후 전원까지' 걸리는 시간이 지연되는 사례는 여전한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 1년간 지연을 얼마나 경험했냐는 질문엔 '매우 자주 경험'이 19%(10곳), '자주 경험'이 42%(22곳), '가끔 경험'이 27%(14곳)로 집계됐다.
이들은 해당 시범사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장치(복수 응답)로 '상급병원 수용능력 확대'(39곳, 75%), '진료협력 네트워크 내 회송·연계 수가 신설'(35곳, 67%), '전원체계 전산화 및 지역 내 이송 컨트롤타워 구축'(28곳, 54%), '권역별 전원·이송 표준 매뉴얼 마련'(25곳, 48%), '전원 병원에 대한 적정 수가 및 지원 신설'(20곳, 38%), '달빛·시범사업 병원 간 정보공유 시스템 구축'(14곳, 27%), '지역 소아응급 전담 행정 전담인력 배치'(9곳, 17%) 순으로 지목했다.
협회는 '기능 중심의 달빛어린이병원'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을 1형(의원형)과 2형(병원형)으로 구분하고 진료 기능에 따라 보상 구조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형은 야간 경증 환자 진료와 신속 전원을 담당하는 의원 중심 모델로, 2형은 검사·입원·응급대응이 가능한 병원형 모델로 해 스탠바이 코스트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직접진료 가산이 필수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게 협회 입장이다.
이 협회 최용재 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은 "달빛어린이병원이 이제는 단순히 '몇 시까지 문을 여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에 무엇을 해낼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재편돼야 한다"며 진료협력 네트워크의 제도화를 전제로 한 기능기반 달빛(1·2형) 구조로의 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야간 진료 기관의 수보다 '그 기관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가 핵심"이라며 진료협력 네트워크를 본사업화해 의원–병원–권역병원이 시간의존성 질환을 지연 없이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야간 검사와 입원, 수액치료, 응급대응이 가능한 소아청소년병원이 운영시간 기준으로 제도 밖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조건부 2형 기능 인증'으로 제도권에 편입해야 한다고도 협회는 제언했다.
현재 수도권의 달빛 어린이병원 지정 기관은 전국의 70% 이상을 차지하지만 경북·강원 등 일부 지역은 20~30㎞ 반경 내에 소아 야간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곳도 있다. 협회 이홍준 부회장(김포아이제일병원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정책 방향도 구분해야 한다"며 "수도권은 이미 인프라가 충분한 만큼 '질 중심 전환'이 필요하며 비수도권은 여전히 기본 야간 진료망이 부족하므로 '양적 확충'과 '강소병원 육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