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증원안이 확정되자 의사단체가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정원 규모 논의에 참여해 온 대한의사협회(의협) 측이 구체적인 대정부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이전 의정 사태와 달리 비교적 반발 수위가 낮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이날 오후 4시부터 거버넌스 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 중이다. 전날 저녁 기자회견 직후 긴급 상임이사회를 개최한 의협은 이날까지의 논의 내용을 종합해 오는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추가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거버넌스 회의는 의협 외에도 대한의학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전국시도의사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여러 의사 직역 단체가 참여 중이다. 의협은 일부 의대생들에게도 이날 회의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기자와 통화에서 "의대 정원 확대 관련 대응책을 포함해 광범위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직역 단체별 의견을 듣고 종합적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는 2027학년도부터 5년간 의대 입학 정원을 총 3342명 확대, 연평균 668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하는 안을 확정했다. 다만 의대 교육 여건 등을 고려해 내년엔 490명만 늘린 뒤 이듬해부터 점차 증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의사단체는 정부 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앞서 예고한 '강경 투쟁안'에 대해선 계획을 구체화하지 못한 상태다. 내부에서 대응책을 논의 중이란 입장이지만 이전 의정 사태만큼 반발 수위가 높진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앞서 의협은 지난달 31일 전국 의사 대표자 대회를 열고 "정부의 반(反)지성적 행태에 결사 항전하겠다"며 강경 기조를 드러낸 바 있다.
2년 전 의정 사태의 중심에 섰던 전공의들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정일 대전협 공보이사는 본지에 "내부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아직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병원에서 수련 중인 한 전공의는 "최근 전문의 시험 일정이 겹치다 보니 의대 증원엔 관심이 덜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의정 간 대립이 이어지는 만큼 여진은 불가피해 보인다. 일각에선 의협 집행부의 책임론까지 불거진다. 의협 산하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에서 "지금 수준의 의협이라면 없는 게 의료계에 훨씬 이득"이라며 "안이한 대처로 파국을 야기한 의협 집행부는 퇴진하라"고 날을 세웠다.
반면 환자·시민단체 사이에선 증원 규모가 부족하단 주장도 나온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합리적 근거와 숙의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결정을 부정하는 건 의료계가 요청한 논의 구조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추계 원안보다 여러 차례 (증원 규모가)축소된 점에 깊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보건의료노조·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로 구성된 국민중심의료개혁연대회의도 입장문에서 "2027년 입학생이 전문의가 되는 시점은 2037년 이후"라며 "지금 대폭 증원해도 빠듯한데 정부는 고작 490명으로 적당히 시간을 때우려 한다. 정부는 환자 안전 건강권과 노동권을 함께 담는 의료 개혁 패키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