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수분도는 정상인데, 피부장벽은 정상보다 높네요. 진료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난치성가려움증센터에서 기자가 들은 소견이다. 평소 아토피피부염과 알레르기비염을 앓는 기자의 팔에 간호사가 수분도·피부장벽 측정기를 각각 댔더니 수분도는 82.5점으로 정상범위(50~100점)였지만, 피부장벽 수치가 37.3점으로, 정상범위(20점 이하)를 크게 웃돌았다. 이곳 김혜원 센터장은 기자에게 "피부장벽 수치가 높을수록 피부장벽이 손상당했다는 의미"라며 "가려워서 긁으면 피부장벽이 손상당하고, 이는 염증을 증폭해 다시 가려움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한림대강남성심병원이 지난달 29일 신관 1층에 문을 연 '난치성가려움증센터'로, 만성 가려움증 환자를 정밀진단하고 맞춤치료하기 위해 국내 최초 가려움증에 국한해 다학제 협진을 진행한다. 문 연 지 20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센터 내 환자 대기석 30여개엔 환자들로 꽉 차 있었다. 이곳 교수 1인당 하루 평균 가려움증 환자 100~120명을 진료할 정도로 가려움증 환자 사이에서 '가려움증 치료 성지'로 소문났다는 전언이다.
가려움증은 흔한 증상이지만, 가려움증이 6주 이상 지속할 경우 '만성 가려움증'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가려움증이 오래되면 환자들은 수면장애를 겪거나 불안·우울감이 커지는 등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가려움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가려움증이 전신질환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우리 국민 10% 이상이 만성 가려움증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실제 만성 가려움증은 아토피피부염, 만성 두드러기 등 피부질환뿐 아니라 콩팥질환, 간질환, 내분비질환, 자가면역질환, 신경계 질환, 노인성 질환 등 다양한 전신질환과 연관된 복합질환으로 인식된다. 특히 국내 노인인구가 늘면서 피부 노화, 만성질환, 복합약물 복용 등과 관련한 가려움증 환자도 크게 늘었다.
문제는 환자가 가려움을 느껴도 정작 맨눈으로 보이는 피부 병변이 뚜렷하지 않거나, 가려움을 유발하는 원인이 여러 개 섞인 경우가 적잖은데, '3분 진료'로 불리는 국내 진료환경에서 정확한 진단을 놓치고 항히스타민제·스테로이드 중심의 대증치료로 단순히 가려움증을 줄이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피부의 문제가 아닌 전신질환이 있는 사람,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피부 질환으로 오인해 접근했다간 진단·치료 모두 늦어질 수 있다. 이에 센터에선 증상 양상과 악화요인, 복용 약물, 생활환경, 동반 질환 등을 종합 평가한 뒤 필요에 따라 혈액검사와 피부조직검사, 첩포검사, 피부 장벽 검사 등을 시행해 원인을 추적한다. 이후 2~4주 간격으로 치료 반응을 평가하며 단계적으로 치료 전략을 조정한다.
특히 첩포검사는 생활 속 접촉성 알레르기 원인을 찾는 데 중요한 검사다. 염색약과 금속, 향료, 세제, 화장품, 고무, 직업성 물질 등 혈액검사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원인을 진단하는 데 활용되며, 오랜 기간 반복 치료에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만성 가려움증 환자에서 진단의 단서가 된다.
원인이 확인되면 환자별 맞춤치료가 시작된다. 염색약이나 생활용품 성분이 원인이라면 해당 물질 노출을 차단하고 피부염증을 조절하는 치료를 시행한다. 특히 중증 아토피피부염과 결절성 양진, 노인성 가려움증 환자에게는 협대역 자외선B(NB-UVB) 치료와 엑시머레이저 치료를 시행한다. 또 피부염증을 완화하는 파장의 LED 치료를 한다.
협대역 자외선B 치료는 311~313nm 파장의 자외선을 피부에 조사해 염증 반응과 면역세포 활성을 조절하고 가려움을 유발하는 신경·면역 경로를 완화하는 치료다. 치료받을 때 환자는 속옷 등 옷을 모두 벗고 얼굴만 보호한 채 자외선을 쬐며 소아·노인·임신부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
또 센터는 환자 상태와 가려움증 원인에 따라 면역반응과 염증 유발 신호를 조절하는 JAK 억제제, 특정 면역 물질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생물학적 제제, 가려움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오피오이드 수용체 조절 항소양제, 신경계의 과도한 가려움 신호를 완화하는 가바펜티노이드 계열 항소양제 등을 적용했다. 기존 항히스타민제 중심 치료에서 벗어나 면역·신경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정밀 맞춤 치료를 통해 환자별 원인과 증상에 따른 단계적 치료를 시행하며 임상 연구까지 연계하는 원스톱 진료체계를 구축했다.
김 센터장은 "난치성 가려움증 치료는 단순히 가려움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가려운지를 찾은 뒤 치료 반응에 따라 전략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라며 "특히 기존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거나 전신 증상이 동반된 경우에는 피부질환뿐 아니라 면역·신경계 이상과 전신질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고려한 다학제 협진 기반 정밀진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난치성가려움증센터는 단순 진료를 넘어 환자 레지스트리 구축과 임상 연구, 최신 치료법 적용을 통해 국내 난치성 가려움증 표준 진료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정밀의학 기반 맞춤치료로 오랜 기간 반복되는 가려움으로 삶의 질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