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약값 흔드는 '특수관계 도매사'…법 바꿨는데도 왜 못 막나

박정렬 기자
2026.05.21 07:30

[MT리포트]도 넘는 사립대병원 거래(下)

[편집자주] 사립대병원 운영자인 학교법인이 의약품 도매사를 설립하고 이곳이 산하 병원과 거래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현행법상 지분율 49% 이하라면 불법이 아니지만, 병원이 약을 싸게 살 이유가 사라져 결국 환자가 경제적 피해를 보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거래의 맹점과 해결책을 모색한다.

"약값 싸질 수 있는데 '큰 손' 대학병원 요지부동…정부 감시해야"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대표(약사)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 의약품 도매사를 세우고 산하 병원에 약을 공급하는 행태가 약가 인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온다. 병원이 약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도 그렇지 않아서 환자는 비싼 값에 약을 사고,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대표(약사)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형태의 의약품 도매 카르텔로 보인다"며 "병원이 약을 싸게 사야 하는 유인을 제거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실거래가 약가 인하라는 제도가 있는데, 병원이 약을 싸게 사면 이를 신고하고 평균 가격을 더 낮게 새로 정하는 것"이라며 "대학병원은 구매약의 종류와 양이 많아 (가격 인하 시 평균가가) 1~2%씩 싸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유인이 학교법인이 대형 도매사를 운영하면 사라진다"면서 "병원이 약을 더 많이, 비싼 것을 처방하게 될 수 있어 환자에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건강상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의약품 유통 관계자도 "이른바 특수관계 도매사가 약가를 인위적으로 올린 채 고정하는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 비용은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 즉 국민 보험료로 충당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관계 도매사는 병원 의약품 납품에 대한 권한을 기반으로 일반 도매사로부터 싼값에 의약품을 구매하고, 병원에는 상한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공급해 그 차익을 이윤으로 가져간다"며 "병원 장부상으로는 싸게 산 흔적이 남지 않고, 건보공단에 신고되는 병원의 실구매가가 상한가와 거의 같다"고 전했다.

이어 "약을 싸게 살 수 있어도 비싸게 사고, 병원에 돌아가야 할 마진은 합작법인이 흡수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며 "이런 특수관계 의약품 도매사의 영업이익률이 비교적 높은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이라 덧붙였다.

약사법은 의료기관이나 약국 개설자가 의약품 도매상의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지만, 학교법인은 49%를 맞춰 이런 규제를 회피한다.

약사법상 지분율 숫자를 낮춰 영향력을 줄이자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근본 문제인 독점 납품 구조를 건드릴 수 없다는 한계가 따른다. 지분율을 30%로 조정해도, 29%로 재편하면 그만이란 것이다.

이에 도매사는 실질적인 구매 대행과 물류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따른 절감액과 수수료 등을 병원이 투명하게 공개하는 '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 부대표는 "국민 건강과 가격 경쟁력이 있는 도매사를 육성하고 의약품 유통 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의약품 유통 정보를 관리하는 건강보험심시평가원이 도매사와 병원 간 계약을 관리 감독하는 등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약사법 본뜬 의료기기법…개정 후에도 '꼼수 거래' 위험 여전

상급종합병원 의료기기 도매사 점유율 현황/그래픽=김지영

국회가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공정성·투명성 제고를 위해 의료기기법을 개정했지만, 약사법을 거의 그대로 따라 이대로라면 '꼼수 거래' 위험성이 여전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행 약사법상 의약품은 학교법인이 지분 49%를 가진 도매사로부터 법인 산하 대학병원이 의약품을 공급받아도 '특수관계'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이 아닌데, 의료기기도 이를 본떠 동일한 특수관계 기준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의료기기 판매업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의료기관 간의 거래를 원천 차단하는 의료기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해 김남희·김선민·김윤·서명옥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을 통합·조정한 것으로, 2년 뒤인 2027년 1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불공정한 의료기기 유통구조에 피해가 누적된다는 업계 지적에 따라 입법이 추진됐다. 대학병원은 간접납품업체(간납사)를 통해서만이 의료기기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이런 간납사를 병원과 연관된 사람이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어 대금결제를 미루거나 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는 등 '갑질'이 자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중 특정 의료기기 도매상 공급 비율이 90%를 넘는 곳은 2023년 24개, 2024년 25개로 모두 사립대병원이었다. 당시 김 의원은 "간납사가 대형병원을 사실상 지배하는 구조"라며 "리베이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공정 거래를 해치는 불공평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료기기법이 개정 돼도 이 같은 '문제적 거래'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설된 의료기기법 개정안 제18조 제5항은 특수관계 거래를 금지하는 약사법 제47조 제7항의 입법 사례를 따랐는데, 적용 대상을 의약품 도매상→판매업자 등으로 바꾸기만 하면 될 정도로 거의 똑같다.

현행 약사법상 학교법인이 지분을 49% 이하로 갖거나, 이사를 2명 이하로 추천한 합작법인이 산하 대학병원에 의약품 거래하는 건 '특수관계'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이 아니다. 의료기기 역시 법이 개정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합작법인을 만들어 거래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적발 시 처벌도 미미하다. 약사법은 특수관계 거래가 이뤄질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분 기준이 무겁지만, 의료기기는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다. 특수관계 거래 현황을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 보고한 의료기기 업체에도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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