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허가 후 급여 출시 방침에 7개월째 환자 치료에 쓰이지 못하는 데 대해 개발사인 SK바이오팜과 국내 생산·판권을 보유한 동아에스티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된다. 비급여로 출시하면 환자가 당장 쓸 수 있는데도 급여 출시를 고수하는데, 이같은 결정에 대해 신약 개발 경험이 많은 글로벌 제약사조차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미국·유럽에서는 수많은 환자를 구한 '국산 신약'을 제약사의 방침 때문에 정작 한국 환자는 쓰지 못하는 현실에 의사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이중작용제 세노바메이트는 동아에스티가 지난해 2월 품목 허가를 신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속 심사를 거쳐 같은해 11월 허가받았다. 이후 비급여·급여 출시 중 후자를 택해 현재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비용효과성 평가와 약가 협상 등의 과정을 고려하면 내년 초에야 국내 환자가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전부터 의료계에서는 세노바메이트 허가·출시에 속도를 높여 당장 필요한 환자가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왔다. 세노바메이트가 한국을 비롯한 다국가 임상시험에서 유의미한 발작 빈도 감소율과 완전 발작 소실률을 기록하며 '게임 체인저'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2019년, 유럽에서 2021년 허가받아 각각 '엑스코프리', '온토즈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이 약을 정작 종주국인 한국 환자는 아직도 쓰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부 의사는 우려와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수도권의 신경과 전문의 A씨는 "효과가 좋으면 처방량이 많을 것이고 비급여든 급여든 매출은 잘 나오지 않겠느냐"며 "다양한 루트로 제약사에 하루빨리 허가받고 출시해달라 요청했는데 특허 만료가 도래할 때까지 국내에서 못 쓸 줄은 몰랐다"고 혀를 찼다.
그는 "임상시험을 했더라도 한국인에게 실제로 사용하면서 효과와 부작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세부 처치 방안을 공유·교육해야만 신약이 환자에게 더 많이, 잘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내 허가 신청도, 출시도 늦은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반감에 '처방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릴 만큼 의사들의 마음이 돌아서고 있다"고 전했다.
신약 허가, 급여 등재 경험이 많은 글로벌 제약사도 세노바메이트가 비급여 출시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관련 업계 B씨는 "비급여로 먼저 출시해 환자에게 치료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게 급여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귀띔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C씨도 "글로벌 제약사는 국내 식약처의 허가를 받으면 비급여로 출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환자가 너무 적을 경우는 수급이 어려울 수 있지만 세노바메이트는 국산 신약인데 그럴 리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서만 출시 후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총 1조 794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외에서 수많은 환자를 살린 'K-신약'을 정작 국내 환자는 해외에서 역수입하고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제품 '온토즈리'의 국내 공급 건수는 2025년 2분기 65건에서 2026년 1분기 268건으로 4.1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공급량(팩 기준)은 79팩에서 347팩으로 4.4배 늘었다.
이에 대해 수도권의 또 다른 신경과 전문의 D씨는 "당장 발작으로 쓰러져 죽을 수 있는 환자를 진정시키고 살리는 약이니 수입해서 쓰다가 급여를 받으면 연착륙하는 게 맞다"며 "제약사도 약가 협상 등 출시를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급여 등재를 신청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비급여로 출시해도 (약가 부담에) 실제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환자가 많지 않을 수 있고 추후 급여 협상에 변수로 작용해 오히려 환자 접근성·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러 출시를 늦추는 건 아니고 가능한 가장 빠른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제품 출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SK바이오팜은 "국내 허가·출시는 동아에스티 소관으로 세부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SK바이오팜과 동아에스티는 자체 개발한 신약을 국내 출시하지 않은 사례가 세노바메이트 이외에도 더 있다. SK바이오팜의 수면장애 치료제 '수노시', 동아에스티의 항생제 '시벡스트로'는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만 판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