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전략이 초기 단계를 넘어 후기 개발 단계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앞선 기술이전 성과로 축적한 자금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후기 임상을 직접 수행해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목적이다. 초기 기술을 빠르게 이전해 자체 개발 위험부담을 줄이던 기존 전략에서 나아가 자산 가치를 극대화한 뒤 협상에 나서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리가켐바이오와 에이비엘바이오 등 국내 바이오 기술수출을 주도해 온 플랫폼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전략 변화가 본격화하고 있다. 확보한 자금력과 글로벌 신뢰도를 바탕으로 개발 단계를 한층 끌어올려 기술가치를 높인 뒤 이전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글로벌 기술이전 시장의 가치 평가 기준이 높아진 것이 한몫했다. 특히 항체-약물접합체(ADC)를 중심으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임상 2상 수준의 데이터를 확보한 뒤 대형 규모 기술이전을 잇달아 성사시키면서 후기 개발 역량이 기술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인체 대상 효능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임상 2상 데이터는 상업화 가능성에 강력한 근거가 되는 만큼, 기술이전 시장에서 높은 평가 요소가 된다. 특히 과거 초기 단계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던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최근 보유한 대형 품목 특허 만료에 보다 확실한 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 지원책에 힘입어 빠르게 2상 단계에 진입한 중국 신약 후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수요를 이끌어 낸 배경이다.
실제로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Evaluate)에 따르면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중국 바이오기업 간 기술이전 계약 건수는 2022년 42건에서 2025년 93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계약 한 건당 평균 선급금 규모도 5200만달러(약 807억원)에서 1억7200만달러(약 2670억원)로 200% 이상 증가했다. 임상 2상 등 PoC(개념입증)를 확보한 자산에 글로벌 빅파마가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중국의 PoC가 끝난 임상 데이터들이 시장에 많이 나오면서 글로벌 빅파마의 눈높이가 그쪽에 맞춰져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중국은 임상 2a·2b 단계 자산이 너무 많고, 결국 우리(국내)도 임상 2상의 PoC까지 갈 수 있는 지원이 강력하게 나와야 지금의 흐름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기업들은 제도적 수혜를 이용하는 한편, 각자 시장 변화에 맞춰 기술사업화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ADC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초기 신약 후보 이전 성과를 쌓아온 리가켐바이오는 최근 국민성장펀드로부터 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다. 향후 4년간 자금 압박 없는 연구개발은 물론, 자체 후기 임상 추진 및 기술이전을 병행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부여된다.
에이비엘바이오 역시 이상훈 대표가 후기 임상 자체 수행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힌 상태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을 상대로 다수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며 기초 체급을 키운 만큼, 보다 진화된 형태의 기술이전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이 대표는 "미국 자회사인 네옥바이오를 만든 이유 자체가 임상을 조금 더 끌고 가기 위함"이라며 "자체적으로 조금 더 개발해 과거 1000원 받을 것을 1만원을 받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에이비엘바이오는 네옥바이오 설립 초기부터 핵심 파이프라인을 임상 2상까지 완료한 뒤 기술이전이나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하는 전략을 세운 상태다. 초기 기술이전보다 개발 위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더 높은 가치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특정 신약 후보가 아닌 플랫폼 기술 자체를 공급하는 알테오젠은 계약 형태 고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처럼 단일 자산을 비독점 방식으로 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수 자산을 묶은 멀티에셋 계약 등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계약 구조를 추진하고 있다. 플랫폼 적용 범위도 항암제를 넘어 RNA 등 신규 모달리티까지 확대하며 협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전태연 알테오젠 사장은 "이미 특정 잠재적 파트너는 많은 제품에 대해 한꺼번에 계약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곳이 있고, 그 전에 다른 형태의 약들을 테스해 본 상태"라며 "멀티 제품을 비롯해 그동안 안 했던 형태의 품목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후기 임상의 가치는 국내사인 디앤디파마텍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디앤디파마텍은 대사이상관련지방간염(MASH) 치료제 'DD01'의 글로벌 임상 2상을 기술이전 전 단계에서 수행해 지난 5월 긍정적인 결과를 공개했다. 이후 보다 높은 가치의 기술이전 가능성이 주목되며 기업가치가 크게 재평가됐다.
한국바이오협회 이 부회장은 "국내도 임상 2상에 대한 펀드가 확대되고 거기서 경쟁력을 입증한 자산이 3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투자와 기술이전, 상장이 선순환하는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며 "중국이 먼저 만든 시장의 흐름에 국내도 올라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