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같은 무더위가 밤까지 덮쳤다.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현상이 올해 12일째 이어지면서 역대 기록(2024년 8.8일)을 이미 갈아치운 데다, 최저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열대야'까지 강릉과 서울에서 나타났다. 이처럼 극강의 무더위가 밤까지 습격하면 단순히 잠을 방해할 뿐 아니라 전신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문의들의 경고가 잇따른다.
열대야·초열대야가 숙면을 방해하는 이유는 뭘까. 체온과 수면의 연관성에 답이 있다. 사람은 잠자기 2시간 전 가장 높은 체온을 유지한다. 이후 수면과 함께 점차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잠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면서 깊은 잠을 유지한다. 이후 잠에서 깨어나기 2시간 전까지 체온이 내려갔다가, 이후 체온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신원철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하지만 잠자는 밤 동안 대기 온도가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열대야·초열대야) 체온도 떨어지지 않아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게 된다"며 "결국 깊은 잠이 들기 어렵고 자주 깨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대야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극심한 피로감과 집중력 저하, 두통, 소화불량 등 증상이 나타난 경우를 '열대야 증후군'으로 지칭한다.
잠을 자기에 적절한 온도는 18~20도다. 하지만 열대야(25도 이상)와 초열대야(30도 이상) 땐 체내의 온도조절 중추가 흥분돼 각성상태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자주 깨면서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며, 낮에는 졸리고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면 통증에 대해 더 민감해질 수 있다. 인천힘찬종합병원 신경과 박정훈 센터장은 "열대야로 잠자는 시간이 줄면 뇌에서 통증 자극을 감지하는 영역이 과민해지고, 통증 신호를 걸러내고 억제하는 기능은 약해질 수 있다"며 "같은 정도의 자극도 평소보다 더 아프게 느끼거나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등 통증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잠이 부족하면 통증 자극을 감지하는 뇌 영역의 반응은 커지지만, 통증을 평가하고 조절하는 영역의 기능은 둔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역치가 낮아져 같은 정도의 자극도 평소보다 더 아프게 느낄 수 있다. 특히 관절염이나 척추질환을 앓는 환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기존 통증을 더 심하게 느끼고, 심해진 야간통이 다시 수면을 방해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열대야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뇌 속 생체시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늦게 자든 일찍 자든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밤에 잠을 설쳤다고 해서 늦잠 자거나 낮잠을 30분 이상 잤다가는 불면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과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배가 고파 잠들기 어렵다면 따뜻한 우유 한 잔 정도로 가볍게 배를 채워주면 도움 된다. 자기 전, 덥다고 수박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는 행동은 권장되지 않는다. 야간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에 가느라 자주 깰 수 있어서다. 늦은 밤 납량특집 공포영화를 보면 뇌가 지나치게 자극받아 신경이 예민해지고 잠을 설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카페인이 든 음료, 담배, 흥분제, 술은 숙면을 방해하므로 자기 전 피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를 해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몸에 물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선풍기 바람으로 말리면 체온을 쉽게 떨어뜨릴 수 있다. 단, 너무 찬물에 샤워하거나 에어컨 냉방 기능을 강하게 작동해 심한 체온 변화를 가져오면 숙면을 방해하고 식욕부진과 소화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통기가 잘 되는 시원한 침구류를 사용하면 좋다. 면, 텐셀, 대나무 레이온 소재 등 통기성 소재의 침구류를 사용하면 몸의 수분을 쉽게 흡수하고 빨리 증발해 체온이 빠르게 낮아진다. 쿨링 매트리스와 패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침대에서 잠들기 전 스마트폰 등 LED 또는 OLED 패널이 있는 기기(스마트폰·태블릿 등)를 사용하는 건 피해야 한다. 이런 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청색광)가 멜라토닌 생성·분비를 현저히 줄여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게 방해한다. 또 고성능 PC, 대형 TV도 열이 상당히 많이 분출돼 체온을 떨어뜨리는 데 방해된다. 따라서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부터는 전자기기를 멀리하는 게 좋다.
높은 습도는 방을 더 덥게 만들어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게 만들어 깊은 수면을 방해한다. 실내 습도는 수면에 가장 좋은 '50% 내외(40~60%)'로 조절한다. 에어컨 냉방 온도를 너무 낮게 설정하면 혈관을 수축해 몸속 열의 발산을 박아 오히려 체온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방 안 온도를 고려해 23~26도로 설정하는 게 숙면에 적당하다.
만약 잠이 줄어든 어르신이 열대야로 더 못 잘까 걱정한다면 평소 생활습관을 교정해 수면의 질 자체를 올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신 회장은 "60세 이후에는 생체시계가 위치한 시상하부가 늙으면서 기본적으로 예전보다 잠을 못 자게 된다"며 "자려고 누워도 20분 이상 잠이 안 오면 누워있지 말고 거실에 앉아 독서, 편안한 음악 감상, 복식호흡, 스트레칭 등으로 자극을 조절해 졸릴 때쯤 다시 눕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