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은 밀가루 전쟁으로 시작됐지만, 우리는 유류세로 시작했다." 노란조끼 시위자 프랑크 뷜러는 지난 6일 영국 BBC에 이번 시위를 프랑스 혁명(1789)에 빗댔다. 먹을 빵이 없어 봉기한 프랑스 농민들과 기름값 부담에 시달리는 자신들을 동일시한 것이다.
반면 정부의 입시정책에 반발해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지난 3일 '다시 68혁명'을 외쳤다. 1968년 당시 학생운동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면서 샤를 드골 대통령이 사임한 역사의 재현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번 노란 조끼 시위가 '68 혁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라고 평가한다.
시위 참가자들이 언급할 만큼 프랑스혁명과 68혁명은 현재 프랑스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프랑스혁명=1789년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는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으로 막대한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왕정은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귀족과 성직자들이 아닌 평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불평등한 세금 정책이 이어지자 파리 시민들은 그해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무기를 빼앗아 왕가에 저항했다. 혁명의 시작이었다. 프랑스는 매년 이날을 '바스티유 데이'로 부르며 전역에서 축제를 연다.
전문가들은 프랑스혁명이 근·현대의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고 보고 있다. 영주 소속의 농민에 불과했던 이들을 '프랑스 시민'으로 정의하면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국경, 국가와 국기 등 국가의 상징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주변 국가들이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선전포고한 직후인 1792년 작곡됐다. 국기의 파랑, 하양, 빨강색도 프랑스 혁명 당시 구호였던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한다.
댄 산체스 미국경제교육재단(FEE) 콘텐츠 대표는 "프랑스 혁명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탄생했다"면서 "이 개념들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50년 전 '68혁명'='문화 혁명'으로 불리는 68혁명도 오늘날 프랑스의 탈권위주의적 문화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 받는다.
68혁명은 1968년 1월 파리의 대학생들이 성(性)적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당시 파리의 대학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기숙사에서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파리 10대학 학생인 다니엘 콘-밴딧이 대학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콘-밴딧은 이후 프랑스 대학생들 사이에서 반권위주의 인사로 유명해졌다.
콘-밴딧을 포함한 8명의 대학생은 3월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하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파리 사무실을 습격했다가 체포당한다.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가 이어지자 파리 10대학 측은 5월 3일 학교를 폐쇄, 정부에 시위 진압을 요청한다. 이후 시위 규모가 급속도로 불면서 그 내용도 반전을 넘어 탈권위·인권·여성·환경에 대한 운동으로 확장됐다.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에 수백만명의 직장인들도 학생들을 지지, 임금인상·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5월11일 이후 파업에 나섰다.
프랑스 사상 초유의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는 막바지에 흐지부지됐지만 프랑스 사회를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2차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드골 대통령은 10년 만에 대통령직을 내려놨다. 68혁명은 이후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도 확산되면서 전 세계의 반전운동 및 학생운동에 영감을 줬다. 리처드 월린 뉴욕시립대 역사학교수는 "68혁명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바꾸었다"면서 "권위주의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페미니즘, 환경주의 등 사회 해방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