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최고 부호 자리를 차지했던 마윈(57) 알리바자 창업자가 올해 5위로 추락했다. 대신 생수업체와 바이오업체를 거느린 종산산(67) 회장이 원화 70조원에 달하는 재산으로 중국 갑부자리를 꿰찼다.
올해 중국 부호 순위 변동을 보면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중국 국유은행을 '전당포'에 비유하며 미운털이 박힌 마윈의 알리바바는 계열사 앤트그룹의 상장이 중지됐을 뿐 아니라 올해 3조원이 넘는 과징금 폭탄을 부과받는 등 중국 정부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특히 플랫폼업체, 사교육, 부동산 업체 등 중국 정부가 고강도 규제를 펴는 업종에 해당하는 기업가는 재산이 쪼그라들었고 2차전지, 전기차 등 중국 정부가 연일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업종의 기업가는 재산이 급증했다.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는 중국 최대 사교육업체 TAL 에듀케이션의 장방신(40) 회장이다. 올해 7월 중국 정부가 '쌍감'(雙減, 숙제·사교육 부담 경감) 정책을 발표한 후 장방신 회장의 재산은 94% 증발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TAL 에듀케이션 주가는 지난 2월 19일 사상 최고가인 90.15달러를 기록했으나 11월 2일 4.18달러로 95% 넘게 하락한 상태다.
중국 부자연구소인 후룬연구원(胡潤硏究院)이 발표한 '2021년 후룬 중국 100대 부호'를 통해 중국 경제의 변화를 짚어보자.
중국 최대 부호 자리는 재산이 우리 돈으로 70조원에 달하는 종산산 농푸산췐(農夫山泉) 회장이 차지했다. 종 회장은 진단키트 및 백신을 제조하는 완타이 바이오팜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2위는 61조원의 재산을 가진 장이밍(38) 바이트댄스 전 회장이 차지했다. 바이트댄스는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회사로서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중국 인터넷기업이다. 장이밍 창업자는 최근 최고경영자(CEO)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는데, 중국 당국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2선 후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쩡위친(53) CATL 회장은 재산 58조원으로 3위를 기록했으며 올해 중국에서 가장 '핫'한 기업인이다. 중국 최대 배터리업체인 CATL 주가는 올해 주가가 2배 이상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1조4700억 위안(약 265조원)로 불었다. 바이주업체인 마오타이, 중국 최대 국유은행인 공상은행에 이어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3위다.
CATL은 전기차 붐을 타고 올해 주가가 급등한 간펑리튬, 윈난 에너지 뉴머티리얼 등 2차전지 관련주를 이끄는 대장 역할을 해내고 있다. 쩡위친 회장 역시 올해 CATL 주가 상승 영향으로 재산이 약 2000억 위안(약 36조원) 급증했다.
4위는 마화텅(50) 텐센트 회장이 차지했다. 마 회장의 재산은 57조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대비 19% 줄었다. 올해 중국 정부가 플랫폼·게임업체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5위는 마윈(57)이다. 중국 10대 부호 중 가장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공개적으로 중국 국유은행을 '전당포'에 빗댔던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의 재산 감소폭은 36%에 달했다. 마윈은 올해 중국 부호 중 유동성 위기에 빠진 헝다그룹의 쉬자인 회장에 이어 재산 감소폭이 두 번째로 큰 부호다.
종산산, 장이밍, 마화텅 등 중국 최대 부호들이 언론 공개를 꺼리고 로우키(Low key)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부호들은 절대 공개적으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과 기업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윈만 예외였다.
한편 2017년 중국 최대 부호 자리를 차지했던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은 지난해 5위에서 올해 70위로 순위가 급강하했다.
7위를 차지한 웨이지엔쥔(57) 창청자동차 회장 역시 눈여겨볼 만한 기업가다. 중국 최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조업체인 창청자동차는 SUV 및 전기차 판매 확대로 올해 주가가 지난해 3월 저점 대비 8배 상승했다. 창청자동차 시가총액은 약 4588억 위안(약 82조6000억원)으로 현대차(약 51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올해 중국 부호순위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내용은 부호들의 업종별 분포다. 중국은 20년 전에는 농업이 상위권을 휩쓸다가 10년 전에는 부동산, 5년 전에는 인터넷, 올해는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주도업종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 중국 부호 업종별 분포를 살펴보면 제조업 비중이 27%로 가장 높다. 그 다음은 고령화를 반영하는 헬스케어(10.8%), 부동산(9.4%), 화공(6.4%), 금융투자(6.1%) 순이다. 즉 2차전지, 전기차 등 첨단제조업 비중이 큰 폭 상승했으며 인터넷, 부동산, 사교육은 감소하는 등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산업과 규제하는 산업 현황이 그대로 반영됐다.
이 같은 상황은 중국 부호 순위뿐 아니라 증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중국 주식시장에서는 정책시(政策市)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증시가 정부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가 주가를 올리는 건 힘들지 몰라도 떨어뜨리는 건 쉽다. 중국 주식은 절대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반대로 투자하면 안 된다. 올해 중국 정부의 중점 규제 대상은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한 인터넷 플랫폼 업체이며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이 중점 지원 대상이다. 중국이 미중 전략경쟁을 맞아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올해 홍콩거래소의 항셍테크(HSTECH) 지수 움직임을 살펴보자. 항셍테크지수는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텐센트(SNS·게임), 알리바바(전자상거래), 메이퇀(배달음식), 콰이셔우(숏폼 동영상) 등 중국 인터넷기업 비중이 높은 지수다.
지난해 코로나19 발발로 인한 디지털 전환 가속에 힘입어 항셍테크지수는 지난 2월 18일 사상 최고치인 10591.53으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반독점법을 빌미로 플랫폼 업체 규제를 강화하고 게임 규제까지 도입하면서 하락을 거듭하다가 지난 1일기준 40% 넘게 하락한 6279.39로 마감했다.
항셍테크지수가 줄곧 하락하는 동안 BYD, CATL, 간펑리튬, 윈난 에너지 뉴머티리얼 등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주는 중국 증시에서 자금이 몰리며 2배 가까이 올랐다. 모두 중국 정부가 발벗고 밀어주는 첨단제조업에 속한 기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