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우리나라 무역흑자의 80% 이상을 차지해온 대중 무역흑자가 급감하고 있다. 올해 5월 28년 만에 적자전환한 후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던 대중 무역수지는 9월 흑자를 기록했으나 10월 다시 적자로 주저앉았다.
2017년 사드(THAAD)사태로 인한 한한령(한류금지령)과 2018년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중 관계가 구조적인 변화에 돌입한 가운데, 한중 무역구조 역시 장기 변화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만은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방문시 중국군이 대만 봉쇄 훈련을 하는 등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처럼 보이지만, 정작 대중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누리면서 실속을 챙기고 있다. 한국과 대만의 대중무역을 살펴보자.
지난 5월 대중 교역에서 약 11억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8년 만에 기록한 대중 무역적자이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었다. 대중 무역수지는 8월까지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9월 반짝 흑자 전환했으나 다시 10월 12억5000만 달러의 적자로 전환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최대 적자다.
대중 무역흑자는 2013년 628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계속 줄었으며 올해 1~10월 약 26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전체 무역흑자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대중 무역에만 기댈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국제 원유가 급등으로 올해 1~10월 무역적자가 356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다.
올해 대중 무역흑자가 급감한 원인은 뭘까. 산업통상자원부의 '2022년 10월 수출입 동향'은 중국 부동산 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대외 수요 부진에 따른 생산 정체로 중국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으며 반도체·철강·디스플레이 수출이 줄면서 대중 수출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단가가 급락하면서 10월 전체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7.4% 급감한 영향이 컸다. 반도체 중에서도 시스템반도체 수출 금액은 43억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7.6% 증가했지만, 메모리반도체 수출금액이 44억7000만 달러로 작년 대비 35.7% 급감했다. D램·낸드플래시 가격이 글로벌 수요 약세와 재고 누적 영향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10월 1일~25일까지의 대중 반도체 수출도 지난해 대비 23.3% 줄었다.
대중국 수입도 늘고 있는데, 한 가지 재밌는 현상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 중간재는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걸로만 알았는데, 중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재가 늘고 있다. 바로 배터리 양극재 핵심 원료인 수산화리튬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2차전지 핵심 재료인 수산화리튬(산화리튬 포함) 수입금액 17억4829만달러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한 금액이 14억7637만달러로 84.4%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9% 증가한 규모다. 수산화리튬 가격이 지난해 10월 t당 약 17만 위안에서 올해 9월 t당 약 50만 위안 이상으로 200% 넘게 급등한 영향이 컸다.
수산화리튬 수입증가는 신성장 산업인 전기차·2차전지 분야에서 중국 주도의 공급망이 형성되고 있으며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의 입김이 커진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며 중국산 부품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중국의 배터리산업 가치사슬 형성을 저지하고 나섰다. 우리도 수산화리튬 수입선 다변화, 리튬 자원 확보가 시급해졌다.
한국의 대중 수출 감소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중국의 수입도 살펴보자. 최근 중국의 수입에서 가장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영역은 반도체와 대(對)대만 교역이다.
지난해 대중 무역에서 가장 큰 흑자를 기록한 국가도 대만이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중국은 대대만 교역에서 783억 달러어치를 수출하고 2498억 달러어치를 수입함으로 무려 1715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9월도 중국은 대만과의 교역에서 1198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이 한국과의 교역에서 기록한 적자는 지난해 646억 달러에서 올해 1~9월 318억 달러로 큰 폭 감소했다. 참고로 중국 해관총서 통계는 자유무역항인 홍콩을 통한 수출입 분류 차이로 인해 한국의 대중 수출입통계와 다르게 집계된다. 그러나 중국의 대한국 무역적자 감소와 한국의 대중 무역 적자 전환의 추세는 동일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수입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약 8%로 대만(9.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연속 중국 수입시장 1위를 차지했으나 2020년부터 2년 연속 대만에 1위를 내줬다.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 부진 영향도 있지만,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통신 제품의 영향력 감소가 주된 원인이다.
대만의 대중 최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한국과 대만의 대중(對中) 무역구조 비교 및 시사점'에 따르면 올해 1~8월 대만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20.9% 증가하며 대중 수출의 51.8%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대만의 대중 반도체 무역흑자도 223억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183억 달러)보다 21.7% 늘었다.
대만의 대중 반도체 무역흑자가 증가한 이유는 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한국과 달리 시스템 반도체 수출이 올해 기준 73.8%에 달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대만은 팹리스(반도체설계)-파운드리(반도체제조)-후공정(팩키징·테스트)으로 연결되는 반도체 생태계를 자국 내에 구축했다.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한국보다 우수한 생태계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의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도 대만이다. 2018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집중되자 중국은 반도체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대만 반도체 수입을 확대했다.
올해 1~7월 중국 반도체 수입시장에서 대만의 점유율은 35%로 미국의 대중 제재가 시작된 2018년보다 6.1%p 상승했다.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19.6%로 2018년 대비 4.8%p 하락했다. 미국의 대중 제재로 인한 반사이익을 한국이 누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대만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으며 한국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이유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는 반도체 경기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지만, 대만이 강점을 가진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주문생산 방식으로 매출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바일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설계하는 대만 미디어텍은 중국업체 주문이 급증하며 올해 2분기 글로벌 AP시장에서 점유율 43%를 기록하며 퀄컴(24%)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인한 중국의 대만 봉쇄훈련 등 정치적으로는 최악으로 치닫는 것 같은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관계에도 대만은 대중 교역을 통해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대만이 가진 반도체 분야에서의 압도적인 비교우위 때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이 대중 교역에서 당연한 듯 무역흑자를 누리던 시기는 끝났다. 앞으로 대중교역에서 무역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시스템 반도체 등 중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를 적극 육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