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23살 때 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아이 셋을 낳고 70년을 함께 살았는데, 직전 5년은 함께 버틴 시간에 가까웠다고 한다. 남자는 2019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은 어려워지고 신체기능도 점점 나빠졌다. 옆의 아내도 노환에 따른 지병이 깊어졌다. 두 사람은 고향집에 나란히 손을 잡고 누워 함께 삶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9일 아내와 동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의 이야기다.
노부부의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건 네덜란드가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해서다. 네덜란드는 "회복 가능성 없이 극심한 고통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점차 안락사의 문턱이 낮아졌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으로 견디기 힘든 사람, 미성년자도 안락사가 가능해졌다. 급기야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불치병인 1~11세 어린이도 안락사가 가능케 하겠다며 관련 제도를 정비 중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말한다. 신이 주신 인간의 생명을 인간이 거둬갈 수 없다는 이유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을 닮은' 인간답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신의 뜻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평행선을 그린다.
하지만 안락사를 둘러싼 '인간 영역' 속 찬반 논쟁은 좀 다르다. 최근 유럽인권법원은 벨기에의 한 의사가 '치유할 수 없는 우울증'을 주장한 여성에 대해 안락사를 진행시켰다가,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는 사건도 있었다. 안락사 제도를 악용한 사회적 타살 가능성이나, 의료비 문제를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약자들만 안락사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한부 판정 자체가 모호하다는 주장도 있고, 오래 투병한 환자가 우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타당성 논란도 있다. 앞서 안락사를 합법화한 캐나다의 2022년 안락사 통계를 보면, 안락사를 신청한 사람 가운데 1.9%가 철회했고, 3.5%는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철회한 사람들은 주로 의사와 상담한 후 마음이 바뀌었다고 대답했다.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 중에는 심각한 질병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 경우, 또는 환자가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신호다.
네덜란드라서 가능했던 노부부의 '선택'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껏 고민해보지 못한 유형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여기엔 개인의 삶을 존중하려는 시선과 사회적 절차에 대한 신뢰, 그리고 정부의 안락사에 대한 엄중한 태도가 꼭 필요하다. 국회 계류 중인 안락사 법(조력 존엄사법) 통과 자체는 급한 일이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