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의 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수십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24시간이 지나도록 완진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향후 확인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현지 경찰은 해당 단지에 대한 보수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 임원 2명과 컨설턴트 1명을 체포했다.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을 종합하면 전날 오후 2시51분쯤(현지시간) 발생한 화재로 아파트 단지 8개 동 중 7개 동에 불이 번졌다. 화재가 발생한 지 24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 기준 최소 55명이 숨지고, 76명은 입원 상태, 270명 이상이 실종 상태다.
홍콩 소방 당국은 소방차 200대 이상과 구급차 약 100대를 배치했으며 1200명 넘는 소방관과 구급 인력을 투입했다. 불이 붙은 7개 동 중 3개 동은 화재 발생 24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산발적인 불씨가 남아 있어 진압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이날 오후 소방당국은 "오전 피해 건물 31층의 현관에서 남성 노인 한 명을 구조했다"면서 고온과 무너진 비계(임시 가설물)로 인해 구조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1000명 넘는 인력을 동원해 주민 900명을 8개 대피소로 이동시키고 구조 작업을 돕는 등 긴급 지원에 나섰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는 31층짜리 아파트 8개 동 2000세대로 이뤄졌다. 2021년 인구조사 기준 약 4600명이 거주하며 이중 약 40%가 65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3년 완공돼 올해로 42년 된 이 단지는 '40년 넘은 건물은 대규모 보수를 해야 한다'는 홍콩 당국 규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경찰은 보수 공사 중 사용된 가연성 자재가 화재를 급속도로 확산시킨 것으로 보고 건설회사 임원 2명과 컨설턴트 1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건물 외벽에 사용된 보호망, 방수포, 비닐 등 소재가 화재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건물에서는 가연성인 스티로폼(발포 폴리스티렌) 보드가 모든 층 로비 창문을 막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에 설치된 그물망도 빠른 화재 확산의 원인으로 꼽혔다. 토니 자 홍콩공학회 건축분과 전 회장은 "그물망이 불연성이었다면 화재 확산 속도가 이렇게까지 빠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재 영상을 보면 그물망이 화재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자 회장은 화재가 건물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대나무 비계는 홍콩 건설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자재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등 안전 문제가 줄곧 제기됐다. 이에 홍콩 정부는 올해 3월부터 단계적으로 대나무 비계 폐지를 시작했고 공공 건설의 50%에 금속 비계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밖에 7개 동 보수 공사가 한 번에 진행된 점, 주민 거주 상태로 진행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호핑탁 홍콩구룡비계공회 이사장은 "여러 건물을 동시에 보수 공사하도록 승인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보수 공사가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했다고 말했다. 또 "주민이 거주 중인 건물에 비계와 그물망을 설치한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의 기상 상황도 화재 확산을 부추겼다. 홍콩 기상청에 따르면 홍콩은 최근 건조한 대기에 강한 바람이 불어 화재 위험이 극도로 높은 환경이었다. 기상청은 지난 24일부터 적색 화재 위험 경보를 발령했으며 화재가 일어난 전날에도 경보는 유효한 상태였다.
홍콩 정부는 이번 화재를 "중대한 재난"이라고 규정하고 긴급 대응에 나섰다. 당국은 화재 직후 경보 단계를 잇달아 상향해 전날 오후 6시22분 5급 화재 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4명이 사망한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 이후 처음이다. 이번 화재는 176명이 사망한 1948년 창고 화재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참사 대응을 위해 12월7일 예정된 입법회 선거 홍보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선거 연기 필요성을 검토해 며칠 안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경찰 전담반을 구성했다"며 "주택 당국은 건축 자재가 화재 안전 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참사 이후 기업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아머 등을 보유한 스포츠의류 기업 안타그룹은 3000만 홍콩달러(56억5000만원)를, 바이트댄스, 텐센트, BYD, 트립닷컴 등은 1000만 홍콩달러(18억8300만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발언에서 시작된 중국·일본 간 갈등의 중심에 선 대만의 라이칭더 총통은 소셜미디어 X를 통해 피해자 및 유가족에 애도를 표하고 "모두 홍콩을 위해 기도하자"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