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체크포커스]<3>K밸류체인을 지켜라(종합)
①배터리 소재보국

지난달 4일 세종시 소정면 고등리에 들어서자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공장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색과 회색, 갈색이 어우러진 저층 건물들이 들어선 이곳은 포스코퓨처엠(211,500원 ▲8,000 +3.93%)의 음극재 공장으로, 국내에서 유일한 대규모 천연흑연 음극재 생산 거점이다. 최근엔 K배터리 공급망 자립의 '심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음극재는 양극재와 함께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핵심 소재다. 문제는 중국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약 95%에 달한다는 점이다. 포스코퓨처엠이 무너진다면 K배터리에 들어가는 음극재의 경우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장에서 만난 구경모 포스코퓨처엠 세종음극재생산부장은 "직원들 모두 포스코그룹의 '제철보국' 정신을 잇는 '소재보국'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배터리 밸류체인을 지키고 있는 기업이 포스코퓨처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극박(동박)은 SK(321,000원 ▲20,000 +6.64%)넥실리스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42,400원 ▲1,000 +2.42%), 솔루스첨단소재(9,250원 ▲400 +4.52%)가 중국 기업들과 시장 쟁탈전을 펼치고 있다. 양극재 중간 소재인 전구체 사업에는 LS(278,500원 ▲22,500 +8.79%)그룹·고려아연(1,517,000원 ▲95,000 +6.68%)·에코프로(149,100원 ▲9,600 +6.88%) 등이 도전장을 냈다. 분리막 소재는 SKIET 등이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명감'만으로 부족한게 사실이다. 중국 기업들이 '저가 대량생산'을 앞세워 시장을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극재 뿐만 아니라 전구체 등 주요 소재들도 중국의 시장점유율이 9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소재사 대표는 "솔직히 아직까지는 BEP(손익분기점)가 맞추는게 목표"라고 전했다. 그만큼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국내 이차전지 소재기업들이 중국에 밀려 K배터리 밸류체인에서 배제된다면 껍데기만 한국산이고, 내부 소재는 대부분 중국산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중국산 택갈이' 배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기업의 힘은 중앙 정부 차원의 막대한 지원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지원을 미룰 때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생산 보조금 지급 외에도 ESS(에너지저장장치) 입찰 등에서 국내 소재 활용 프로젝트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을 채택해 K배터리 생태계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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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음극재 방파제

"우리는 방파제다."
지난 4일 포스코퓨처엠 세종음극재공장에서 만난 구경모 세종음극재생산부장은 K배터리 생태계에서 포스코퓨처엠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음극재 시장의 약 95% 를 차지하는 상황 속에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흑연과 인조흑연 음극재를 모두 양산하는 기업의 결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배터리 핵심 소재인 음극재 국산화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날 찾은 2공장에서는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제조동 사이를 분주히 오갔고, 설비 돌아가는 소리가 현장을 채웠다. 연산(연간생산량) 4만8000톤 규모 설비를 갖춘 이 공장에서는 매일 검은 가루 형태의 천연흑연이 첨단 소재로 재탄생된다. 실제로 구형화된 흑연 입자 표면에 얇은 탄소층을 입히는 코팅 공정과 열처리를 통한 소성 공정을 거친 뒤 음극재가 완성된다. 음극재는 양극재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면서 전류를 흐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차전지의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소재다.
최근 탈중국 밸류체인이 배터리업계의 화두로 떠오르며 포스코퓨처엠이 생산 중인 음극재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글로벌 배터리, 완성차 기업 등과 '조 단위' 계약 체결 소식을 잇따라 발표했다. 세종 천연흑연(연산 7만4000톤)과 포항 인조흑연(8000톤)에 올 하반기 착공에 들어갈 베트남 인조흑연 음극재 신규공장까지 더해 수요 확대 국면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인조흑연의 경우 포스코 제철공정에서 나오는 콜타르를 활용하기 때문에 공급망 내재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또 전남 광양과 경북 포항, 중국에 총 17만5000톤의 양극재 생산능력까지 갖췄다. 양극재·음극재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어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북미를 중심으로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 이어지면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어 원료 개발과 공정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충전 속도를 단축하면서도 안정성과 수명을 높인 저팽창 천연흑연 음극재 2세대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1세대 제품은 이미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인조흑연 음극재와 관련해서는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전력 사용량은 최대 5배를 줄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등 차세대 수요가 기대되는 실리콘 음극재 개발을 추진 중이고, ESS(에너지저장장치)용 인조흑연 음극재를 통해 시장 다변화에도 나섰다. 장수명과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ESS 시장 특성에 맞춘 기술로 글로벌 음극재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미국의 PFE(금지외국단체)와 유럽의 IAA(산업가속화법) 등 중국을 겨냥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포스코퓨처엠에 호재가 될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포스코그룹은 자체 공급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탄자니아·모잠비크 등에서 확보한 인상흑연(원재료)을 포스코퓨처엠의 자회사 퓨처그라프에서 가공해 구형흑연(중간소재)을 생산하고, 천연흑연 음극재를 만드는 구조다.
구 생산부장은 "양·음극재를 모두 생산해 공급망 재편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대규모 양산 능력과 글로벌 자동차업체 및 배터리사 공급 이력 등을 보유하고 있어 국가별 정책변화에 대응하려는 고객사로부터 협업 요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③배터리 소재 기업들 고군분투

K배터리의 힘은 K밸류체인에서 나온다. 기업들은 단순 배터리 셀과 팩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원료 및 핵심 소재부터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얘기다.
1일 시장조사기관 리서치네스터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소재 시장 규모는 올해 696억 달러(약 105조원)에서 2035년 1524억 달러(약 230조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연평균 시장 성장률은 9.2%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리서치네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전기화 추세 속에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 소재들에 대한 수요 역시 폭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들도 이같은 시장성에 주목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유일의 양극재·음극재 동시 생산 기업인 포스코퓨처엠(211,500원 ▲8,000 +3.93%)이 대표적이다.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소재인 양극재 시장의 경우 LG화학(312,500원 ▲13,500 +4.52%)과 에코프로비엠(202,000원 ▲9,800 +5.1%), 엘앤에프(147,400원 ▲3,500 +2.43%) 등도 주요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필수 중간 소재인 전구체는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9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에는 니켈 등 원료를 혼합해 만드는 전구체 생산에 국내 기업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LS(278,500원 ▲22,500 +8.79%)그룹은 엘앤에프와 손잡고 새만금·온산(울산)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황산니켈→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완성에 나섰다.
고려아연(1,517,000원 ▲95,000 +6.68%)은 LG화학과 합작사인 한국전구체(KPC)를 통해 국산 전구체를 공급한다. 연산(연간생산량) 2만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한 고려아연은 오는 2027년에 온산 '올인원 니켈제련소'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나온 고순도 황산니켈을 KPC 등에 납품하는게 목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인도네시아 니켈을 활용해 전구체를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 흑연계 음극재를 대규모로 만드는 기업은 포스코퓨처엠뿐이지만, 음극재를 감싸는 전지박(동박)은 복수의 기업이 밸류체인을 지키고 있다. SK넥실리스는 현재 한국 전북 정읍(연산 5만2000톤)과 말레이시아(5만7000톤)에 동박 생산라인을 돌리고 있다. 폴란드 공장에서도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료가 싼 말레이시아 공장 생산 비중을 높이고 ESS(에너지저장장치)향 수주를 늘리면서 전기차 시장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 국면을 버티는 중이다. 특히 올해 ESS향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0%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42,400원 ▲1,000 +2.42%)는 전북 익산과 말레이시아를 거점으로 연산 8만톤 규모의 동박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초극박·고강도·고연신 하이엔드 동박을 중심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20% 안팎이던 ESS 매출 비중도 올해 40~60%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 내년까지 익산 공장 전지박 라인을 회로박 라인으로 100% 전환해 AI(인공지능) 관련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총 8곳의 글로벌 배터리 및 완성차 고객사를 확보한 상황에서 헝가리에 연산 3만8000톤 규모의 생산거점을 갖추고 있다. 캐나다 퀘벡주에 건립할 생산기지의 경우 올해 하반기 완공이 예정돼있다. 북미와 유럽 모두에서 현지 생산 동박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세일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