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이상 반도체 설계를 다른 반도체 회사에 제공해 라이선스와 로열티 수익에 의존해온 영국의 암(Arm) 홀딩스가 처음으로 자체 칩을 생산해 판매한다.
르네 하스 암 최고경영자(CEO)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행사에서 판매용으로 자체 제작한 칩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칩은 데이터센터용 CPU(중앙처리장치)로 AGI CPU라고 명명됐다.
이로써 직접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중립적 지위를 지켜와 반도체 업계의 스위스라 불려온 암은 사업 구조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암은 AGI CPU가 AI 에이전트 시대를 겨냥해 만든 CPU라며 인텔과 AMD의 CPU 아키텍처인 x86 기반의 서버 대비 와트당 성능이 약 2배라고 소개했다. 동일한 전력과 공간에서 두 배의 성능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암 주가는 이날 정규거래 때 1.4% 하락했지만 하스 CEO가 장 마감 직후 AGI CPU로 향후 5년 내에 150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체 매출액이 25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면서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8% 이상 급등했다.
이달 말로 종료되는 2027 회계연도에 암의 매출액이 49억달러로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하며 향후 5년 내에 매출이 5배 늘어날 것이라는 야심 찬 전망이다.
암이 판매하는 AGI CPU의 초기 고객으로는 메타 플랫폼스와 오픈AI, 일부 중소기업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메타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며 올해 최대 1350억달러의 자본지출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2월에는 엔비디아와 AMD와 대규모 AI(인공지능) 칩 구매 계약을 맺었다.
메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폴 사브는 CNBC와 인터뷰에서 "(서버용 CPU) 시장에는 사실상 두어개의 플레이어만 존재하는데 암의 참여는 우리 생태계에 또 다른 플레이어를 더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소프트웨어 스택과 공급망에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버용 CPU 시장은 인텔과 AMD가 사실상 양분해왔다. 이에 따라 암이 판매할 신형 칩의 가장 직접적인 경쟁자는 인텔과 AMD다. 하지만 암은 현재 고객인 엔비디아와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과도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엔비디아의 그레이스와 베라 CPU는 암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알파벳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대형 클라우드 업체는 암의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한 자체 CPU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스 CEO는 "시장이 매우 방대하다"며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공존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암의 CPU 시장 진출은 CPU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AI GPU(그래픽 처리장치) 시장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는 최근 CPU가 "(반도체 공급망의) 병목 지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퓨처럼 그룹은 CPU 수요 증가를 "조용한 공급 위기"로 표현하며 2028년까지 CPU 시장의 성장률이 GPU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GPU는 수천 개의 코어(core: 데이터를 읽고 계산하는 핵심 부품)가 수많은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AI 모델 학습과 실행에 적합한 반면 CPU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강력한 코어로 순차적인 범용 작업을 수행한다. 특히 에이전틱 AI는 다수의 에이전트간 데이터 이동이 많아 대규모 범용 연산 능력이 요구된다.
한편, 암은 자사 반도체 설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자사 설계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모든 프로세서에 대해 로열티를 받아왔다. 암의 주요 고객은 애플과 퀄컴, 삼성전자, 브로드컴 등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암이 설계한 반도체를 기반으로 구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