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탈출' 7마리 의리견" 전세계 울었는데…드러난 진실 '허탈'[트민자]

윤세미 기자
2026.03.29 06:05

도살장 탈출극 아닌 '발정기 가출 소동'…귀여운 바이럴 뒤에 숨은 편견의 덫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사진=더우인

'홈워드 바운드'라는 영화가 있다.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주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로 반려동물의 충성심과 우정을 보여준다.

최근 '중국판 홈워드 바운드'가 SNS를 뜨겁게 달궜다. 중국 지린성의 한 도로에서 찍힌 영상으로 셰퍼드, 웰시코기, 골든리트리버 등 서로 다른 개 7마리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웰시코기가 대열의 맨 앞에서 뒤를 살피며 무리를 이끌었고 몸집이 큰 골든리트리버는 도로에서 차들로부터 동료들을 보호하려는 듯 바깥쪽에서 걸었다. 동료들은 다친 것으로 보이는 셰퍼드를 세심히 보살폈다.

이 개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트럭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집을 찾아가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더 화제가 됐다. 전 세계 누리꾼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중국의 개고기 식용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감동 드라마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짜'였다.

영상은 사실…서사는 허구

팩트부터 확인하자면 영상은 실제 상황이었다. 중국의 한 누리꾼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지린성의 한 도로 위를 걷던 7마리의 개를 영상으로 찍었다. 그는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 영상을 올리며 "마치 고난을 함께 겪는 형제들처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고 적었다.

영상은 금세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조회수는 2억회를 훌쩍 넘었고 수많은 밈과 채팅, 토론으로 이어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뉴욕포스트 등 외신을 타고 이 개들의 사연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상에 붙은 서사는 허구였다. 26일 CNN은 중국 국영 매체 커버뉴스와 지역 매체 시티이브닝뉴스를 인용해 이 개들은 모두 촬영 장소에서 몇㎞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키우던 개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암컷 셰퍼드가 발정기에 집을 나갔고 같은 마을의 수컷 개 6마리가 셰퍼드를 따라 나갔다는 설명이다. 도난이나 탈출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발적 가출이었던 셈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갈 뻔했다는 내용은 추측에 불과했고 증거도 없었다.

매체는 이 마을 개들은 평소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발정기엔 하루 이틀씩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현재는 개들 모두 집에 돌아갔으며 셰퍼드는 발정기가 끝날 때까지 목줄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도 전해졌다.

사진=CNN 캡처
웃고 넘겨?…이면에 숨은 위험

이번 '7마리 댕댕이' 사건은 별것 아닌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겉으로 무해해 보이는 바이럴 콘텐츠가 이용자의 판단력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호주 커틴대학교의 타마 리버 인터넷연구 교수는 CNN을 통해 "관심과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보다 사실처럼 보이는 콘텐츠를 무비판적으로 공유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왜곡된 정보나 가짜 뉴스는 '유머'와 '귀여움'이라는 포장에 싸여 쉽게 확산될 수 있다. 바이럴 영상의 원본이 실제 상황일지라도 이를 바탕으로 과장된 서사가 덧붙여지거나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정교한 가짜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대중의 판단력을 교묘히 흐린다는 지적이다.

리버 교수는 "우리가 기대치를 낮추고 어느 분야에선 '대충 봐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비판적 사고 능력이 무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더우인

가공된 서사 속에 편견이 숨어있을 때 문제는 더 커진다. 호주 멜버른 소재 RMIT대학의 티제이 톰슨 디지털미디어 교수는" 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길에 탈출했단 설정은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톰슨 교수는 "가볍게 소비하는 콘텐츠라도 계속 쌓이면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면서 결국 무엇이 사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면서 "그럴 때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그러면 정말 무서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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